[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나라가 온통 '최순실 게이트'라는 하나의 이슈로 올인 하는 분위기다.

아무 직함도 맡지 않았고 공식적인 직함을 맡은 적도 없는 민간인 최순실씨가 대통령의 연설문을 미리 손보고 대통령의 의상 구입을 위해 청와대 비서관을 대동하고 다녔다는 등 황당한 사실들이 뒤늦게 까발려진다.

언론은 마치 여태 몰랐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서로 기사들을 베껴가며 고만고만한 기사들로 뉴스시간, 뉴스 면을 도배한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부터 소문은 무성했었다. 다만 언론은 입을 다물었고 야당이 문제제기를 해도 그저 한두 마디 팩트만 잠깐 전달할 뿐 스스로 취재하고 분석하는 언론 본연의 임무를 외면했을 뿐이다.

그런 분위기 탓에 많은 국민들은 소문들을 믿지 않았다. 실상은 믿기도 어려웠다. 너무나도 비상식적이니까. 그래서 보도 초기에는 왜 겨우 대학생 딸 문제에 그토록 언론이 호들갑을 떠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거슬러 올라가 문고리 3인방이 거론될 때도, 강남 주부들 사이에 팔선녀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그저 반박(反朴) 세력들의 음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다수가 있어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는 떨어질 줄 몰랐었다.

그러던 국민들이 이제야 대통령의 말이 더 이상 대통령의 말이 아닌 것을 알게 됐다. 그러면서 일부이겠으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자들로부터도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표를 줬던 자신이 부끄럽다는 고백들이 나오고 정치권보다 앞서서 그 지지기반에서부터 대통령의 하야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배반감 때문일 터다.

오늘의 이런 어수선함 속에서 자연스레 20년 전 일이 떠오른다. IMF에 긴급 구제 금융을 신청해야만 했던 외환위기. 경제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정치적 필요를 우선하다보니 시기를 놓쳐 자칫하면 국가부도 위기로 몰릴 뻔했었다. 당시 그 위기 속에서 많은 김 대통령 지지자들이 반성했었다. 스스로의 손가락을 잘라야 한다는 둥 자책하는 소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다고 이후 그들의 정치적 판단기준이 바뀌었다거나 한 흔적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그 때 그 정치집단의 지역 기반은 여전히 공고하다. 그저 대통령 한 사람의 무능으로 귀결 지으며 유권자 국민은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고 재빨리 반성을 끝내버렸다.

그런 경험으로 미뤄보면 앞으로도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국정을 파탄내도 유권자들은 입으로 반성하고 또 곧 잊을 것이다. 뒤이어 똑같은 잘못된 선택이 되풀이 될 것이다. 그러니 정치인들 또한 같은 행태들을 반복할 것이고.

그런 속성을 너무 잘 알아서일까. 검찰은 시민단체들의 고발에도 불구하고 한 달 동안 겨우 사건을 건설부동산 사건을 주로 다루던 엉뚱한 팀에 배정한 것 말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고발 대상자며 관계자들이 미리 자료를 없애고 도피할 시간을 벌어준 것이나 진배없다.

그래도 유권자 국민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 탓인지 집권 여당이 먼저 ‘특검’ 카드를 들고 나왔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변명하길 원했지만 지역구 민심을 외면할 수 없는 의원들은 살길을 모색해야 했기에 의원총회에서 지도부의 결정을 뒤집어버렸다.

그런데 종교 문제로 사건을 몰아가는 정치권 일각의 태도나 특정 종교집단의 태도도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국가의 미래를 건 판단을 수시로 내려야 할 대통령의 일을 책임있는 자리에 있지도 않은 일 개 민간인에게 기밀로 유지돼야 할 자료를 사전 유츌하고 검증받는 황당한 현실, 그렇게 주어진 권력으로 국정을 농단해도 변호만 하는 대통령. 이것만 해도 충분히 문제가 되는 마당에 이상한 종교 갈등까지 부추길 일은 아니다. 세상이 어수선할수록 이상한 종교도 극성을 부리는 법 아니겠는가.

다만 이제부터라도 유권자 국민들이 스스로 현명해지는 것만이 같은 일의 반복을 막을 수 있을 뿐이다. 불경에서 말하길 알고 저지르는 자보다 모르고 저지르는 자의 과보(果報)가 크다고 한다는데 그러고 보면 잘 모르고 찍은 국민들이야말로 잘못된 정치의 가장 큰 피해자다. 법을 몰라 범법을 했다고 죄가 가벼워질 수 없듯 잘못 뽑은 정치인의 잘못 또한 그를 뽑은 국민의 책임이다. 그러니 끊임없이 정해진 줄 알고 있는 답을 의심하며 공부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