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돌 손잡이 알아요? 맷돌 손잡이를 어이라 그래요 어이. 맷돌에 뭘 갈려고 집어넣고, 맷돌을 돌리려고 하는데 손잡이가 빠졌네? 이런 상황을 어이가 없다 그래요. 황당하잖아. 아무것도 아닌 손잡이 때문에 해야 될 일을 못하니까. 지금 내 기분이 그래. 어이가 없네."
2015년 8월 개봉해 13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영화 '베테랑'에서 무서울 것 없는 재벌 3세 '조태오' 역을 맡았던 배우 유아인의 대사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널리 알려진 이 대사는 틀렸다. 맷돌 손잡이를 일컫는 단어는 '맷손'이기 때문이다.
'베테랑'의 조태오처럼 맷돌 손잡이를 '어이'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어이 대신 '어처구니'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어이와 어처구니는 같은 말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어이(어처구니)와 '어이없다' 뜻을 찾아봤다. 어이는 "엄청나게 큰 사물이나 사물"(명사), 어이없다는 "일이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히는 듯하다"(형용사)라고 씌어 있다. 반드시 맷돌을 돌리려고 하는데 손잡이가 빠진 건 아니더라도 '황당한' 상황에 맞닥트렸을 때 어이없다고 하면 맞는 셈이다.
살다보면, '베테랑'의 조태오 대사나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에 모두 들어맞을 듯 어이없는 상황에 자주 맞닥트리게 된다.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업계를 강타한 '코오롱 인보사케이주(인보사) 사태'가 그렇다.
지난 4월15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전화를 걸었다. 코오롱생명과학의 미국 자회사 코오롱티슈진이 개발한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의 두 가지 주성분 중 2액(1액은 동종유래 연골세포)이 판매허가 당시 제출 자료에 기재된 'TGF-β1 유전자삽입 동종유래 연골세포'가 아니라 '신장유래세포'로 확인됐다고 식약처가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한 날이다.
식약처 담당자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져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코오롱생명과학이 제출한 자료를 근거로 의약품 판매허가를 내 줬는데, 주성분이 바뀌었다니 그럴만하다고 여겼다. 제약·바이오 업계도 '어이없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하지만 개운치 않았다.
어이없는 일은 이어졌다. 식약처는 5월28일 5월28일 인보사에 대한 품목허가 취소와 더불어 코오롱생명과학을 형사고발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실사 등을 거쳐 인보사 주성분 중 2액이 허가 당시 제출한 자료에 기재된 연골세포가 아닌 신장세포임을 확인했으며, 이런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코오롱생명과학이 감췄다는 게 식약처 설명이었다.
식약처의 인보사 허가 취소 발표 직후 코오롱생명과학은 "17년 전 신약 개발에 나선 코오롱티슈진의 초기 개발 단계 자료들이 현재 기준으로는 부족한 점이 있어, 결과적으로 품목허가 제출 자료가 완벽하지 못하였으나 조작 또는 은폐사실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코오롱생명과학 주장에 인보사 투여 환자들은 손해배상청구소송으로 맞섰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란 시민단체는 코오롱생명과학과 식약처를 검찰에 고발했다.
인보사 사태는 '현재 진행형'이다. 게다가 언제 해결될 수 있을지 가늠조차 어렵다.
지난 4월말 신약 개발 분야 전문가를 만나 인보사 사태 해결 방법을 물어봤다. 그는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 단언했다. 신약 중에서도 '첨단 바이오의약품'으로 불리는 유전자치료제 특성상 진실 규명이 쉽지 않을뿐더러 투여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도 단기간에 확인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6월 들어 검찰이 인보사 사태에 개입했다. 지난 3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소속 검사와 수사관들이 서울 강서구 코오롱생명과학 본사와 코오롱티슈진 한국지점을 압수수색했다. 5월30일 식약처로부터 고발장을 접수한 검찰이 인보사 연구개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발빠르게 강제수사에 나선 것이다.
6월5일 이의경 식약처장이 인보사 투여 환자 안전관리 대책을 발표하며 사과했다. 이 처장은 "환자 안전 대책 수립과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머리를 숙였다. 식약처는 미국 식품의약품국(FDA)의 유전자치료제 장기추적 가이드라인에 맞춰 앞으로 15년간 인보사 투여 환자 상태를 살펴보겠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10개 손해보험회사들이 코오롱생명과학을 상대로 인보사 판매대금 환수를 위한 민·형사소송 계획을 밝혔다.
인보사 사태는 손해보험 업계로까지 번졌다. 주무부처인 식약처도 비껴가기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 투여 환자들의 피해가 걱정스럽다. 신약 개발에 힘을 쏟는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도 득이 될 턱이 없다.
어이없지만 인보사 사태는 이미 터진 둑이다. 맛은 쓰지만 병을 고치는 약이 될 수 있도록 전화위복 기회로 삼으면 된다.
먼저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신약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보장할 수 있는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유효성보다 중요한 게 안전성이다. 안전하지 못하면 약이 아니다. 제대로 된 신약 관리 체계를 갖춘 뒤엔 좌고우면하지 않고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일관성이 중요하다.
이주현 생활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