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유동성 문제 없다" 진화 나섰지만···한편에선 돈 되는 계열사 매각 검토
[서울파이낸스 박시형 기자] 롯데지주와 롯데케미칼, 롯데쇼핑 등 롯데그룹의 주력 기업들이 줄줄이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그룹이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한 상황에서 대규모 차입금으로 인해 유동성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소문까지 퍼진 탓이다.
롯데그룹이 '사실무근'이라며 빠르게 대응했음에도 불안감은 사그라들지 않는 분위기다. 여전히 주가는 최저가 근방에서 머물고 있으며, 일부 계열사는 신저가를 경신했다.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롯데정밀화학은 전날 3만5400원으로 장을 마치며 신저가를 기록했다. 롯데정밀화학은 지난 10월 7일 4만9900원을 기록한 이후 꾸준히 하락해 한달여만에 29.06%나 떨어졌다. 이 기간동안 상승 마감한 날은 7거래일뿐이다.
다른 계열사들도 롯데정밀화학과 별반 다르지 않은 주가 흐름을 보인다.
지주사인 롯데지주는 이달 들어 급격히 추락하는 모습을 보이다 지난 18일에는 장중 -8.86% 하락하면서 2만원 붕괴 직전인 2만50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이 가격은 지난 2020년 3월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일 당시 기록한 최저가다.
같은 날 롯데지주와 함께 신저가를 기록한 롯데케미칼과 롯데쇼핑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6만4800원을 기록한 롯데케미칼은 2009년 5월 이후, 5만6100원을 찍은 롯데쇼핑은 2006년 상장 이후 사상 최저가였다.
이 외 롯데이노베이트(13일 1만9230원), 롯데하이마트(15일 7330원), 롯데칠성(15일 10만7300원), 롯데웰푸드(15일, 10만3000원), 롯데손해보험(20일 1909원) 등 계열사 상당수가 신저가 행렬을 이었다.
롯데그룹의 주가 급락은 롯데지주와 롯데케미칼 등의 차입금이 크게 늘어난데서 비롯됐다. 지난 18일 시장에는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대규모 차입금으로 인해 유동성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롯데지주의 부채총계는 2021년 10조2926억원(부채비율 106.89%)에서 올해 9월 13조1347억원(부채비율 133.81%)로 급격히 늘었고, 올 연말에는 13조9870억원(180.57%)이 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롯데케미칼 역시 같은 기간 부채총계는 7조4159억원(48.03%)에서 14조8278억원(75.42%)로 급증했다.
설상가상 롯데케미칼은 공모 회사채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최근 3년간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을 이자비용의 5배로 유지한다는 조항을 넣었다가, 9월말 기준 4.3배로 요건을 맞추지 못해 약 2조원 규모의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했다고 지난 21일 밝혔다. EOD가 발생하면 채권자들은 만기 전이라도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롯데그룹측은 서둘러 "유동성에는 문제없다"는 입장을 내며 진화에 나섰다. 10월 기준 롯데그룹의 총 자산은 139조원으로 보유 주식 가치는 37조5000억원, 부동산 56조원,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예금 15조4000억원 등이다. 이외 재고자산·매출채권 등 무형자산도 30조1000억원 보유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에 대해서도 "활용가능한 보유예금 2조원을 포함해 가용 유동성 자금 총 4조원을 확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롯데그룹의 적극적인 해명에 단기적으로는 주가가 안정을 찾는 모습이지만, 시장의 우려가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근본적인 원인인 화학·유통산업의 시황이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화학 산업은 주요 수요처인 중국이 생산 설비를 갖추는 등 자급률을 높이면서 2022년 이후 장기간 불황을 겪고 있다. 대표적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는 손익분기점인 1톤당 300달러를 하회한다. 올해 3분기에는 186.47달러였다.
전유진 iM증권 연구원은 "석유화학 업황 부진의 장기화로 재무리스크가 대두되는 업체들의 출현이 본격화되고 있다. 25년 업황이 24년보다는 나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단기적으로는 센티멘털 악화가 불가피하다"며 "롯데케미칼은 인도네시아 NCC, 수소 등 신사업 투자 다수를 앞두고 있고, 연간 이자비용도 약 2조원에 달하는 만큼 재무부담은 계속 높아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서연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롯데케미칼의 이번 회사채 EOD 발생은 신용도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자금 소요 규모가 과도할 경우 회사는 보유 유동성을 상당부분 소진해야 해 추가 자금 확충에 대한 부담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주요 계열사인 롯데쇼핑도 대규모 투자 집행을 앞두고 있어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롯데쇼핑은 영국 리테일 기업 오카도와 국내 6곳에 물류센터를 구축하는데 1조원, 미래형 쇼핑몰인 타임빌라스 확대에 7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2020년 그룹 신성장 동력으로 주목받으며 출범한 e커머스 플랫폼 '롯데온'은 차별화 등 전략 부재로 매년 적자를 기록하면서 누적 손실 5000억원을 넘어선 실정이다. 이 때문에 최근 사옥을 이전하는 등 비용 절감에 나섰고, 지난 6월에는 희망퇴직 신청도 받았다.
결국 롯데그룹은 부산 센텀시티점 등 매출 성과가 부진한 점포 매각과 함께 롯데렌탈, 롯데캐피탈 등 돈이 될만한 계열사들까지 매물로 내놓는 방안도 검토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