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성장률도 2.5∼2.6%로 내려
[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연 2.2%로 기존 대비 대폭 하향했다. 개선되나 했던 미중 무역분쟁이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일본 수출규제가 갑자기 불거져 나왔다. 그것도 우리 경제 버팀목인 반도체가 타깃이다. 올 하반기 반도체 경기 회복을 예상했던 '상저하고' 기대감은 이미 깨진 지 오래다.
한은은 18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5%에서 2.2%로 0.3%p 내려잡았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7월 성장률 목표치를 -1.6%로 낮춘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꺼번에 0.3%p 내린 것은 메르스 사태 여파가 남아있던 2015년 7월 이후 4년 만이다. 지난해부터 따지면 한은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5회 연속 끌어내렸다. 작년 1월 올해 성장률을 2.9%로 처음 전망한 이후 7월 2.8%, 10월 2.7%, 올해 1월 2.6%, 4월 2.5%로 계속해서 하향조정했다.
1분기 역성장(-0.4%)에 이어 2분기 반등 효과도 기대에 못 미치면서 성장세가 둔화한 게 성장률 전망치 하향의 결정적 이유로 꼽힌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상반기 중 수출과 투자가 예상보다 부진했고 앞으로의 여건도 낙관하기 어려운 점을 반영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4월 전망 발표 이후 특히 최근 한두달 상황이 빠르게 변화했다"고 토로했다.
당초 올 하반기 반도체 경기 개선을 예상했으나 미중 무역분쟁은 지속되고 있다. 최근엔 일본 수출규제로 악재가 하나 더 쌓였다. 추가경정예산(추경)으로 소비·투자 확대를 노렸으나 이 마저도 실제 집행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은이 이날 발표한 '2019년 경제전망'을 보면 우리경제가 처한 현실이 더 명확히 보인다. 먼저 수출과 수입은 당초 전망(4월)에선 2.7%와 1.6% 증가할 것으로 봤지만, 이번에는 수출이 0.6% 증가에 그치고 수입은 -0.5%일 것으로 봤다. 한은은 수출이 감소하면서 설비투자도 부진에 빠질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설비투자 증가율 전망치를 기존 0.4%에서 -5.5%로 크게 내려 잡았다. 건설투자 증가율(-0.3%→-3.3%)도 마찬가지다.
수출입이 줄면 경상수지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은은 경상수지가 흑자기조를 유지하겠지만 올해 흑자규모가 애초 기대했던 665억달러에서 590억달러로, 내년에는 585억달러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수도 당초보다 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은 지난 4월 전망에선 민간소비를 2.5% 증가로 예상했지만, 이번에 2.3%로 하향조정했다. 가계소득 증가세 둔화, 소비심리 개선 지연 등으로 지난해보다 증가율이 낮아질 전망이라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7%로 대폭 하향조정했다. 4월과 비교해 0.4%p나 내려잡은 것이다. 한은은 "고교 무상교육 시행, 전기료 누진세 개편, 개별소비세 인하 연장 등으로 물가 하방압력이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한은은 지난 5월 금리동결 의결문에 포함됐던 "국내 경제가 잠재성장률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란 표현을 이날 의결문에서 삭제했다.
이는 성장률 전망치 하향 뿐 아니라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기존 추정치(2.8~2.9%) 대비 낮아졌기 때문이다. 한은은 이날 간담회에서 2019~2020년 잠재성장률이 2.5~2.6% 수준으로 추정됐다고 밝혔다. 앞선 추계보다 0.3%p가량 하향조정된 수준이다.
그 결과 한은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연 1.50%로, 기존 대비 0.25%p 전격 인하했다. 이달 말 금리인하가 기정사실화된 미국보다 한 발 앞서 움직인 것이다. 2003년 카드 사태, 2015년 메르스 사태를 제외하고 한은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보다 선제적으로 금리를 움직인 적이 없었던 만큼, 이날 인하는 한은이 현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보는 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