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공급과잉···국토부, 노선 발굴 위한 TF운영 시동
[서울파이낸스 주진희 기자] 국내 항공업계가 혼란에 휩싸였다. 항공사들은 일본 보이콧의 불씨가 커지자 절반이 넘는 한일 노선을 정리한 뒤 국토교통부로부터 대거 배분받은 중국 노선을 통해 비어버린 수요를 창출하려 했다. 그런데 중국 항공당국에서 가장 수익을 기대할 수 있었던 장가계와 백두산 관문인 연길 등의 일부 노선의 신규운항 신청을 받지 않겠다고 통보한 것.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마주한 항공사들은 우선 너나나나 할 것없이 재빠르게 동남아시아에 희망의 밧줄을 던졌다. 앞서 항공사들은 공급과잉으로 인한 슬롯(Slot)부족 사태와 지난달 초부터 불거진 불매운동, 불안정한 환율과 유류비 상승 등으로 상반기 실적 기준 극심한 적자를 봤다. 남은 하반기의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금 당장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동남아시아 노선을 발굴하는 전략 뿐이라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같은 상황이 심화된다면 국내선, 일본노선 등에서 발생했던 공급과잉 사태가 동남아시아 노선에게도 전이돼 슬롯부족→저가경쟁→노선조정 사태가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23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국내 항공사 대부분 동계 시즌이 시작되는 9~10월에 맞춰 동남아시아·대만 노선 등에 신규 취항 및 증편을 실시한다. 대한항공은 10월 말부터 인천-다낭 노선에 주 7회 증편하여 총 주 21회 일정으로 운항할 예정이며, 인천-클락 노선에 주 7회 신규 취항한다. 이외 인천발 치앙마이·발리 노선도 주 4회씩 늘려 총 주 11회 운항하고, 인천-브리즈번 노선도 주 2회 늘려 총 주 7회 운항하는 등 대대적으로 노선 공급량을 고루 확대한다.
아시아나항공도 인천-다낭 노선을 주 7회 추가 증편해 총 14회 운항할 예정이며 이외 동남아시아 신규 취항 및 증편에 대해 검토를 진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주항공 역시 동남아·대만 노선 늘리기에 나선다. 회사는 내달부터 인천-코타키나발루, 인천-마카오 노선을 각각 주 4회씩 증편 운항한다. 인천-가오슝 노선도 주 1회, 인천-치앙마이 노선도 주 2회씩 늘린다. 뿐만 아니라 대구발 세부 노선도 같은 달 17일부터 주4회(화∙목∙토∙일요일) 일정으로 신규 취항한다.
국토부 제재로 신규취항이 불가한 진에어 또한 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에 대해 내부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써는 김포.청주-제주 노선과 제주-상하이(푸동) 노선의 공급량을 늘릴 것으로 확인됐다.
티웨이항공도 대만 하늘길 확장에 발 벗고 나선다. 먼저 내달 초 김해-가오슝,타이중 노선을 신규 취항한 뒤 지방공항을 통해 영역을 넓혀 나간다는 전략이다. 더해 주 4회 운항하고 있는 인천-타이중 노선도 9월 중순부터 주 7회일정으로 증편해 매일 운항할 예정이다.
이스타항공도 같은 생각이다. 현재 동계 일정을 계획하고 있는 중이라 명확히 결정된 노선은 없지만 동남아시아와 대만을 기준으로 놓고 다양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에어부산도 9월부터 김해-타이베이 노선을 대상으로 주 7회에서 주 10회로 운항한다. 총 1170석의 좌석을 추가공급하는 것이다. 더해 같은 달 21일부터는 김해-가오슝 노선 임시증편을 시행한다.
국내 항공사 가운데 일본 노선을 가장 많이 취항하고 있는 에어서울도 한일 노선을 줄임으로써 남게되는 공급량을 채우기 위해 10월 1일부터 인천-괌·다낭 노선을 대상으로 증편을 단행한다. 더해 올해 말 기재 1대가 추가 도입되는 부분을 고려해 동남아시아 위주로 신규취항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6월 말, 일본 정부가 한국을 향한 보복성 수출규제를 시행하면서 불거진 보이콧의 불씨는 일파만파 커졌고, 결국 국내 항공사들은 두 달도 채 안된 기간 내 총 60개 이상의 노선 정리에 들어갔다. 단기간의 이동거리와 풍부한 관광인프라 등으로 안정적인 수요를 창출하던 일본 노선을 대거 정리하자 각 항공사들은 텅 비어버린 수요를 채우기 위해 지난 5월 국토교통부로부터 배분받은 중국 운수권 전략을 발빠르게 쓸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난 14일, 중국 항공당국에서 10월 10일까지 한중 노선(장가계,연길 등)에 대한 신규.임시.부정기편의 운항 신청을 거부하겠다고 기습 통보한 것.
이는 최근 갑작스럽게 너무 많은 운항 신청이 들어오다보니 대기오염 환경과 공급과잉 사태 등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돼 사전에 이를 방지하고 총량을 조절, 정시운항률을 높이기 위한 중국 항공당국의 대처 의미로 보인다. 다만, 현재까지 중국 정부에서 명확한 사유를 밝히지도 않았고 운항 제한 기한을 더 늘릴 가능성도 있어 항공사들은 발만 동동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올해 상반기의 항공업계 날씨는 무척이나 흐렸다. 2분기만 놓고 봤을 때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양대 항공사 모두 1000억원 이상의 적자를 봤다. 19분기 연속 흑자를 냈던 제주항공도 5년만에 27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마침표를 찍었고 , 진에어 또한 전년 동기 59% 급감한 영업실적을 냈다. 대구를 기점으로 훨훨날던 티웨이항공도 영업손실 264억을 내면서 적자전환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보이콧 영향이 거세지면서 모든 항공사들이 일본 노선을 대거 정리했고 이를 채우기 위해 중국 장가계, 연길 등 단체 여행이 몰리는 노선 취항을 하려했다"며 "갑작스러운 중국 측의 신규운항 거부통보에 사실 많이 난감하고 힘들다. 중국당국의 제한 조치가 풀릴 때까지 우선 중국 운항일정은 미루고 기다리는 수 밖에 없고, 홍콩도 범죄인 인도법안(송한법) 반대시위가 일어나 고객들이 불안해하는 상황이라 돌다보니 결국 동남아로 몰릴 수 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더해 "항공사들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동남아나 대만노선의 시간대를 조정해 공략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타 항공사들의 입장도 같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베트남ㆍ태국 등에 입국한 한국 국적자 수는 전년대비 각기 22%(207만명), 10%(55만명)에 달했다. 제주항공이 자체적으로 집계한 9~10월 동남아시아 노선 예약자 수 자료에 따르면 9월 20만2500명, 10월 18만2400명으로 전년 대비 각각 37%, 96% 증가했다. 특히 10월 코타키나발루 노선 예약자는 1만1600명으로, 지난해 4000명보다 3배 가까이 증가했다. 타이베이도 10월 예약자는 8800명으로 지난해 4260명보다 2배 가까이 예약자가 늘기도 했다. 이처럼 국내 항공업계가 최소한의 실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재로선 동남아시아 영역 확대가 최선의 탈출구인 셈이다.
이에 정부도 항공사들을 돕기 위해 동남아 지역을 기준으로 신규노선 개발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앞서 국토부는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들에 '아세안(ASEAN)지역 LCC 신규노선 개설 지원 테스크포스(TF)운영방안'이란 공문을 전달한 바 있다. 이날까지 신남방정책, LCC 성장둔화, 최근 일본 대체노선 발굴 어려움 등이 추진 배경으로 항공사들로부터 아세안 지역 신규 노선 계획 등을 담은 지원서를 받을 계획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동남아시아는 일본에 비해 관광인프라가 부족하고 항공 이동거리가 멀며, 불편한 교통수단 때문에 일본 만큼의 수요를 대체하기엔 어려울 것 같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더해 모든 항공사들이 한 곳으로 몰리는 만큼 공급과잉에 열이 오르고, 저가경쟁의 구조로 치닫으면서 결국 또 다시 구조조정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LCC 관계자는 "해당 문제가 당연히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이번을 계기로 일본 노선에 의존했던 수요를 타 노선으로 고루 나눠 용이하게 조정해나갈 수 있게 됐다. 중국 노선도 아예 막힌 것이 아니라 조금 일정이 미뤄진 것이기에 정부와 각 항공사들의 논의 등 협력을 통해 영업전략을 세우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런 곳에 저가 항공이 취항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