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절대적인 투자 규모 여전히 적어"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연구개발(R&D) 투자에 인색하던 건설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대형건설사들이 신기술 개발에 주머니를 열기 시작하더니 R&D 조직 강화에 나선 곳도 등장했다. 장기화되는 건설경기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타개책으로 기술력과 차별화가 꼽히는 만큼 연구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 상반기 시공능력평가 상위 5위 건설사가 지출한 R&D 비용은 239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740억원) 대비 37.4% 늘었다.
업체별로 보면 현대건설이 올 상반기에만 777억원을 지출해 연구개발에 가장 많이 투자했으며, △대림산업(548억원) △삼성물산 건설부문(452억원) △대우건설(354억원) △GS건설(261억원) 순으로 뒤를 이었다.
이들 건설사는 전체 매출에서 R&D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도 부쩍 높아졌다. R&D 투자에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현대건설은 지난해 1.2%였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을 올 상반기 1.6%까지 끌어올렸다.
대림산업의 경우 1.15%로, 전년 동기(0.3%)와 견줘 0.85%p 늘어났고, 대우건설(0.83%)과 GS건설(0.5%)은 작년보다 각각 0.28%p, 0.11%p 증가했다. 삼성물산도 지난해보다 0.04%p 확대된 0.75%를 기록했다.
타 산업과 비교했을 때 R&D 투자에 유난히 인색하다는 평을 받는 건설업계가 연구개발비용을 늘리고 있는 것은 침체되고 있는 국내 주택경기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그간 주택시장이 호황을 보이면서 미래를 위한 투자보단 주택사업에 힘을 실었다면 업황이 어려워진 최근엔 미래 경쟁력 확보에 보다 집중하고 있다는 게 건설사들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R&D 조직 강화에 나서는 움직임도 관측된다. 실제 현대건설은 지난해 연구개발본부였던 연구개발 담당조직을 올해 R&D 센터로 확대했다. 운영 중인 기술솔루션실 내 솔루션1·2·3팀을 통합솔루션팀과 토목·건축·플랜트솔루션팀으로 탈바꿈시켰고, 디지털혁신팀과 스마트건설팀을 따로 운영하던 것을 디지털건설팀으로 통합시켰다.
GS건설은 기존 기술연구소 내 기초기술담당 조직 중 인프라해양연구팀을 없애는 대신 스마트건설연구팀을 새롭게 구성했으며, 대우건설은 지난해 2월 스마트건설기술팀을 꾸렸다. 대우건설은 4차산업혁명에 대응해 드론 활용, 건설자동화 등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밖에 삼성물산과 대우건설은 각각 경기도 용인과 수원에 기술연구원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기술연구원에서는 대형구조실험과 설비실험,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기술 교육 등이 이뤄진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그간 아파트를 시공하는 일에 별도의 기술 개발이 절실한 편은 아니었다"면서 "하지만 최근 주택사업 매출이 줄어듦에 따라 건설 생산성 향상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졌고, 자연스럽게 R&D 비용도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업계 곳곳에선 건설업계의 R&D 투자 비용이 여전히 적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설산업의 발전은 물론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을 위해서는 투자규모를 더욱 늘려야 한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절대적인 R&D 투자 규모나 비중을 따져봤을 때 건설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여전히 적은 수준"이라며 "디지털 설계와 드론 등 꾸준한 기술개발이 이뤄져야 세계 건설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