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남궁영진 기자] 라임자산운용 환매 중단 펀드들의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는 가운데, 펀드 자금 '우선 회수권'을 쥐고 있는 총수익스와프(TRS) 계약 증권사가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판매사들은 '선순위 자금 회수' 의사를 거둬들이라며 법적 소송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금융당국은 TRS 계약 조건을 변경하는 등 새 방안을 내놓으며 압박 아닌 압박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TRS 증권사들은 예정대로 자금을 회수하지 않으면 배임죄에 해당한다는 점을 들어 난감해하는 모습이다. 여러 이해관계 요소들을 감안할 때, 증권사들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적잖은 잡음이 예상된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판매사인 대신증권은 TRS 증권사 3사에 "라임 펀드 정산분배금을 일반 고객들보다 우선 청구하지 말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내용증명을 보냈다. 그러면서 "이를 지키지 않아, 대신증권 고객에게 추가적인 손실이 발생할 경우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했다. 여기에 TRS 대출금에 대한 가압류·가처분 등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증권은 반포WM센터 등 지점을 통해 라임자산운용의 펀드를 대량으로 일반 투자자들에게 팔았다. 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터지기 시작한 지난해 7월 기준, 2000억원 규모가 반포WM 지점에서 팔렸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라임과 TRS계약을 맺은 증권사들이 먼저 자금을 빼가면 일부 펀드 투자자들은 한 푼도 못 건질 위기에 처할 수 있다"며 "이에 대신증권은 판매사로서 투자자들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를 이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TRS는 증권사가 펀드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고 일정 수수료를 받는 계약이다. 자산운용사는 일정 증거금을 내고, 그 비중만큼 레버리지(대출)을 일으켜 자산의 수익률을 키울 수 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손실도 그만큼 커진다. TRS 증권사는 일반 투자자보다 자금 '선회수'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대신증권의 내용증명으로 투자자들의 소송과 금융회사 간 법적 분쟁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자금 회수와 손실 부담을 둘러싼 다툼이 예고되고 있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상황과 추이를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TRS 계약 증권사인 신한금융투자와 KB증권, 한국투자증권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대출금을 거둬들인다면, 투자자들의 막대한 손실로 이어져서다. 이중 KB증권에서 판매한 '라임 AI 스타' 시리즈 3개 펀드(472억원)는 전액 손실이 예상된다. TRS로 레버리지(대출)를 일으킨 비율이 100%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증권사는 '우선 회수권'을 이행하지 않으면 배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곤란해 한다. 자본시장 한 전문가는 "'자금 선순위' 권리는 계약서상 명시됐고, 법적으로도 보장됐다는 점에서 증권사들은 대출 원금을 예정대로 회수하고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TRS증권사에 계약 변경을 통해 지연이자 등을 낮추는 등의 내용을 담은 타협안을 제시하고 나섰다. 앞서 '대출 원금 탕감' 등 증권사의 양보를 원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앞서 금감원은 '라임-판매사·TRS 증권사' 간 3자 협의체를 구성, 자산회수 문제에 대해 논의할 것을 권고했지만, 증권사들이 부정적 입장을 보인 바 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TRS증권사들에) '상환 조건을 감안한 계약 조건 변경 여부'에 대해 제안했는데,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이 왔다"고 설명했다. 다만 "언제, 얼마나 양보하겠다는 구체적 답은 얻지 못해, 아직 단언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TRS 계약으로 대출을 제공한 증권사들은 대출 원금에 대한 이자와 향후 발생할 지연 이자 연 10% 가량을 부과하지 않는 쪽으로 계약 변경을 추진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금감원은 계약 조건 변경 등을 제시, 사태 해결을 위한 협조를 요구했지만, 증권사 입장에선 사실상 압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서 "그럼에도 '원금 100% 회수'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예상돼, 타협점을 찾는 중간 중간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