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재건축 사업이 20년 가까이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는 은마아파트의 내홍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재건축 추진위원회(추진위)와 비상대책위원회 격인 은마반상회의 갈등이 격화하면서 동대표 선거일까지 미뤄졌다.
동대표 선거를 주관하는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 추진위와 관련된 인물들이 개입돼 있어 부정선거가 우려된다는 게 은마반상회 측 주장이다. 양측의 감정싸움이 소송전까지 이어지는 탓에 은마아파트의 재건축 사업은 짙은 안개 속에 놓이게 됐다.
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오는 7일에 예정됐던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동대표 선거 일정은 10일로 연기됐다. 동대표 선거관리위원회를 불신임하는 은마반상회가 주말로 선거일을 미뤄야 한다는 항의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동대표 선거관리위원회 측은 "은마반상회 사람들이 선관위원 집에 몰려와 공정한 선거관리를 해야 한다며 협박과 인신공격을 했다"면서 "경찰이 동원됐지만 선관위실을 점령하는 등 막무가내식 행위가 계속돼 선거 일정을 연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파트의 살림살이를 맡는 동대표는 하나의 동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동대표 선관위의 입후보자 서류 심사, 주민 투표 등을 거쳐 선출된다. 추진위와 관련성이 적은 편이다. 그럼에도 은마반상회가 동대표 선거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동대표 선관위에 추진위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반상회에 따르면 선관위원 7명 중 추진위원을 겸하고 있는 사람은 6명. 관련 규정상 문제가 없다고 하나 반상회 측은 추진위가 동대표 선거에 관여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말 격화된 추진위와의 갈등이 동대표 선거로 이어진 셈이다.
은마반상회 관계자는 "추진위 측에서 밀어주는 (동대표 출마) 소유자들은 접수대장 싸인없이 출마 서류를 받아 제출하는 특권도 있었다"며 "추진위가 동대표 선거에 관여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요청에 일부 선관위원은 고함과 함께 용역을 앞세워 몸싸움을 벌였다"고 말했다.
이어 "동대표 선거 투표일을 현실적으로 맞벌이 부부의 투표가 불가능한 평일로 정해놓은 것도 의심스럽다. 추진위원들이 장악한 선관위가 부정선거를 할 것이 염려스러워 많은 주민이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주말로 연기해달라 시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측의 감정싸움은 추진위원장이 재건축 사업을 진전시키지 못했다는 주민들의 불만에서 비롯됐다. 이 과정에서 추진위원장이 100억원의 추진비와 80여억원의 대출금을 무분별하게 사용했다는 논란은 갈등을 더욱 부추겼다.
내부 잡음은 지난 2월 중순, 추진위원장의 임기가 끝난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추진위는 새 위원장 선출을 위한 선관위를 다수결로 구성하자며, 반상회는 관할 자치단체인 강남구청에 선관위 구성을 맡겨야 한다며 날을 세우면서다.
반상회 측은 추진위 운영규정상 아파트 주민 10분의 1 이상 동의하면 구청이 선관위를 구성할 수 있다는 점, 추진위원 미달 시 구청이 선관위를 뽑는다는 강행 규정이 있다는 점을 들어 강남구청이 선관위를 구성하는 게 맞다고 본다.
주민들의 민원에 강남구청 역시 선관위를 구청에서 선임하겠다는 공문을 추진위에 보낸 상태다. 다만 무리한 지자체 개입을 막아야 한다는 추진위원장의 거듭된 소송에 발목이 잡혔다.
실제 앞서 추진위원장이 서울행정법원에 신청한 공문 집행정지는 지난 4월 기각된 반면, 함께 제기한 본안소송이 남아 있어 선관위 구성이 지연되고 있다. 지난 3월 추진위원 미달 소식을 접한 은마반상회가 재차 강남구에 선관위 구성을 요청했을 당시 추진위원장이 행한 집행정지 신청과 본안소송은 아직 법원에 계류 중이다.
상황이 이렇자 일각에선 지지부진한 은마아파트의 재건축 사업이 더욱 장기화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은마아파트의 경우 재건축 초기 단계인 데다 정부 규제로 재건축 추진 속도를 올리기 어려운 상태여서 내홍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단지 인근 은마상가에 위치한 L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재건축 사업은 시간이 돈이나, 지금 상황에서 사업이 더 지연된다 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없다는 집주인들이 많다"면서 "어차피 재건축을 빨리 추진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분쟁의 소지를 깔끔히 없애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주 한국주택협회 부장은 "주로 재건축 단지의 내홍은 사업을 추진하는 조합의 불투명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은마아파트처럼 장기간 사업이 추진되지 못한 단지는 추진위에서 조합까지 가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더군다나 최근엔 정부의 재건축 규제가 많다보니 조합으로 가기 전에 투명하게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어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선관위 구성 문제에 대해서는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서울시나 관할 구청이 개입해 조율을 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