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 대기 수요·임대차3법·대출 규제 '복합적'
[서울파이낸스 박성준 기자] 가을 이사철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서울 아파트 전세시장은 말라붙고 있다. 임대차법 후폭풍으로 전세 물량은 자취를 감춘 것은 물론 전셋값이 급등하며 세입자들의 근심을 더욱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잿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8일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 지역 전세수급지수(31일 기준)는 185.3을 기록했다. 이 지수는 전세 수요 대비 공급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 0~200의 범위에서 기준점인 100을 넘을수록 공급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지난달 전월세 계약 건수는 현재 8000여건을 기록하고 있다. 서울시가 관련 통계를 제공한 2011년 이후 임대차 거래는 월 1만건 아래로 떨어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공급 대비 수요가 많다는 것은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한국감정원 자료를 보면 8월 마지막 주(31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0.09% 상승하면서 62주 연속 오름세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매매값(0.01%)이 보합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이처럼 전세시장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복합적이다. 우선 추가 주택공급 대책이 발표되면서 3기 신도시 등 분양을 기다리는 수요가 늘었다. 특히, '갭투자' 등 불로소득을 원천 봉쇄한다는 등 강력한 규제가 계속되면서 관망세로 돌아선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이며 시장엔 가격이 오른 물량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최근 정부의 전월세 상한제(5% 이내), 계약갱신청구권제(2+2년) 등 새로운 임대차법 도입을 본격화하면서 전세시장 상황은 더욱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모습이다.
정부는 "전셋값이 오른 것은 맞지만 안정화되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다. 최근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의 상승폭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것을 근거로 "상당 지역에서 가격이 하락하는 등 시장 내 쏠림현상이 완화됐다"면서 소기의 성과를 보였다고 평가한 것이다.
하지만 전세물량들은 이미 '억' 단위로 값이 올랐다. 지난 7월 6억5000만원에 거래된 서울 명일동 '삼익그린2차' 전용면적 107㎡은 지난달 8억9500만원에 계약돼 한 달 새 무려 2억4500만원이 뛰었다. 강북권에서도 5억원이 채 되지 않았던 봉천동 '관악파크푸르지오'(85㎡), 상계동 '비콘드림힐3'(85㎡) 등도 한 달간 1억5000만원이 올랐다. 상승률로는 33~42.8%에 이른다.
대치동 C공인중개소 관계자는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는 재건축아파트 2년 실거주 요건으로 집주인이 들어오고, 임대차 계약기간도 늘면서 전세 매물 한 건을 찾기가 어렵다"라며 "반면 전세를 찾는 손님은 끊이지 않으면서 매물을 내놓는다는 연락이 오면 곧바로 계약까지 체결되는 등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 이런 상황이 한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초저금리 상황 속 임대차 규제에 따른 과세가 늘어날수록 보증부 월세를 통해 수익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커질 것"이라면서 "내년 아파트 준공 물량 및 입주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수요는 늘면서 전세값의 상승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전망했다.
특히 이날 발표된 3기 신도시 등 수도권 주요 공공택지 내 공공분양주택을 조기 분양한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서도 임대차 시장에 대한 정책적인 고려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전 청약은 본 청약보다 1~2년 빨라 입주까지는 최소 5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한데, 이는 결국 임대차 시장의 수요·공급 불균형을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실제 입주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법인, 등록임대주택 규제 강화로 이들 물량까지 매물로 나올 경우 임대시장의 매물은 더욱 줄어들 것"이라면서 "특히 전세시장의 문제를 심화시킬 것으로 보이며 '3기 신도시에 입주하면 된다'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