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 규제, 분양가상한제, 지방 대규모 정비사업 포진 영향"
[서울파이낸스 박성준 기자] 최근 대형 건설사들은 프리미엄 브랜드를 출시하는 대신 브랜드 리뉴얼 단행에 나서고 있다. 당초 업계에서는 초고가 재건축 시장인 강남권 진출을 겨냥한 신규 브랜드 출시가 예상됐다. 하지만 서울권역 정비사업 시장이 규제로 묶이고 지방 대규모 정비사업을 비롯한 리모델링, 소규모 정비사업 등의 시장이 확대되면서 전국 단위 브랜드 입지를 다지는 데 더욱 주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24일 특허청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자사 주거브랜드인 '래미안'의 새로운 시각 디자인(로고)을 출원했다. 특이점으로는 기존 래미안의 한문인 '來美安' 대신 영문자 'RAEMIAN'을 포함했다. 색상은 동일하되 기존 로고의 세로 길이가 다른 2종의 특허를 출원했다. 지난 2000년 주거브랜드의 시초격으로 출시된 래미안은 브랜드 영문 표기를 꾸준히 사용했지만, 공식적으로 로고를 변경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최근 건설업계에서 유행하는 영문자 표기 경향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건설사들은 건축물 단지 내 커뮤니티시설, 특화 시스템 등을 대부분 영문으로 표기하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아직 결정된 바는 아니지만, 디자인 상표와 관련해 특허를 출원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현재 내부 임직원 대상 의견을 청취하는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답했다.
HDC현대산업개발도 자사 주거브랜드인 '아이파크' 출시 20주년을 맞아 리뉴얼을 단행했다. '프리미엄 라이프 플랫폼'으로 가치를 재정립하고 디자인도 소폭 변경했다. 기존 글자 형태를 유지하되, 너비를 넓힌 것으로 안정적 규모감을 표현했다고 현대산업개발은 설명했다. 지난해에는 포스코건설이 곡선 형태의 주거브랜드 '더샵' 심벌(#)을 획이 뻗은 형태로 변형했으며, 한화건설은 지난 2019년 한글 형태의 '꿈에그린' 대신 '포레나(FORENA)'라는 영문 브랜드를 새롭게 내세운 바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당초 프리미엄 브랜드가 없는 상위 건설업체를 중심으로 압구정·송파의 강남권을 비롯해 목동신시가지 등 민간 재건축 대장아파트 시장을 노린 프리미엄 브랜드 출시를 점쳤다. 포스코건설은 '신반포21차' 재건축 수주로 강남권 교두보를 확보했지만, 여전히 광역시 시장에서 강세를 보인다는 평가가 있었고, 과거 압구정 현대아파트 개발을 주도했던 현대산업개발도 압구정 재건축을 앞두고 프리미엄 브랜드를 내놓을 것이란 관측이 있었다.
업계에서는 공공 주도의 정비사업 시장 확대 및 서울 재건축 등 정비사업 규제가 본격화하는 등 시장 상황이 악화함에 따라 건설사들이 리스크를 감수하기보다는 안정을 택했다는 분석이다. 안전진단 평가절차 강화 등 서울 재건축 시장 규제는 물론 분양가상한제 도입으로 분양가격이 인하될수록 공사비 단가 인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브랜드 가치가 곧 집값으로 반영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브랜드 이미지 관리는 필수적인 것"이라면서 "새로운 브랜드를 도입한다는 것은 기존 단지 입주자들과의 마찰도 고려해야 하며,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할 수 있다는 자신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해 반포3주구, 한남3구역 등 서울 초대형 정비사업지들이 주목을 받았다면, 올해엔 대규모 정비사업지들이 전국에 포진해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공사비만 8000억원에 달하는 부산 '서금사촉진5구역' 재개발과 창원 '신월1구역'(재건축, 5000억원), 전주 '하가구역'(재개발, 6000억원) 등이 사업이 예정돼 있다. 삼성물산이 그간 주류와는 거리가 멀었던 '고덕아남' 리모델링 수주전에 뛰어든 점도 궤를 같이한다.
부산 해운대 최고 부촌으로 꼽히는 우동 첫 재건축인 '우동1구역'에서는 되레 DL이앤씨가 자사 프리미엄 브랜드인 '아크로'를 제안하기도 했다. 대개 강남권 입성을 위해 프리미엄 브랜드를 사용하는 것을 고려할 때 이례적인 행보다.
전문가들은 기존 브랜드를 강화하는 것이 올해와 내년 분양 공급이 집중되는 시기를 고려할 때 높은 비용 대비 효용을 차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민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업계에선 올해와 내년 사상 최대 분양이 진행되고 이후 가격 안정세로 돌아서지 않겠느냐는 예측을 많이 내놓는 것을 고려할 때 기존 브랜드 강화 전략이 더욱 효율적이라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