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우려했던 '대출 난민'이 현실화하고 있다. 강도 높은 가계부채 총량 관리를 밀어붙이는 금융 당국의 압박에 은행들이 줄줄이 대출 제한 조치를 내놓으면서다.
특히 실수요가 많은 전세자금대출 마저 규제 가시권에 진입했다. 풍선효과를 막으려는 은행권의 선제 대응에다 당국 역시 추가 규제를 검토하고 있어, '가수요 가려내기' 묘수가 나오기 전까진 실수요자의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IBK기업은행·KB국민은행·하나은행 등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축소를 위해 모기지신용보험(MCI)·모기지신용보증(MCG) 대출을 중단하고 있다. MCI는 주로 아파트, MCG는 다세대·연립 등의 주담대를 받을 때 가입하는 보험으로, 이 보험의 가입을 제한하면 대출 한도가 최대 5000만원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은행별로 IBK기업은행은 지난 23일부터 MCI·MCG 신규 가입을 제한했으며, 영업점이 아닌 개별 모집인(상담사)을 통한 모든 대출 상품 판매도 전면 중단했다.
KB국민은행은 전날부터 가계대출을 한시적으로 축소 운영하고 있는데, 주담대의 경우 MCI·MCG 가입을 제한한 상태다. 하나은행은 다음달 1일부터 MCI·MCG 일부 대출 상품의 취급을 한시 중단하기로 했다.
전세대출 문턱도 덩달아 높아졌다. 무주택 실수요자가 주로 받는 대출인 만큼 그간 대출 제한 조치에서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영역이었으나, 당국이 전세대출 규제에 나설 가능성이 커지자 일부 은행에선 선제 대응 움직임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실제로 가계대출 죄기에 나선 국민은행은 주담대, 집단대출, 신용대출은 물론이고 전세자금대출 한도 역시 줄였다. 전세자금대출 연장 시 보증금의 80%까지 대출이 되던 것을 전세 보증금 인상분까지만으로 적용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전세보증금이 5억원에서 6억원으로 오른 경우 기존에는 6억원의 80%인 4억8000만원까지 대출금이 나왔으나, 앞으론 증액분인 1억원으로 한도가 축소된다.
하나은행도 국민은행이 시행한 조치와 같은 내용의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들 은행은 자금 수요가 확실한 차주의 피해를 줄이고자 전세보증금 증액 범위까지는 대출을 내주겠다는 계획이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의 경우 아직 전세자금대출 한도 축소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 다만 당장 한도가 줄어든 수요자들이 다른 은행으로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난다면 추가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게 이들의 전언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증가세가 가파르지 않은 만큼 아직 전세자금대출 한도 축소를 계획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모니터링 후 향후 증가세가 빨라진다거나 수요가 몰릴 경우 추가 조치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선 당국의 가계부채 추가 대책이 임박한 만큼 은행들의 대출 죄기가 전방위로 확산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중에서도 올해 가계대출 증가세를 주도한 전세대출의 한도 축소나 금리인상이 유력하다.
당국도 전세대출의 유리한 조건 등을 거론하면서 전세대출 규제 초읽기에 들어갔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28일 "전세대출이 금리라든지 (대출) 조건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지적이 있어 그런 부분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지금도 선제적인 대응에 들어간 상황인데, 당국 규제가 가시화되면 주담대, 신용대출 등뿐만 아니라 전세대출을 조이는 추이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면서 "실수요와 가수요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당장은 국민은행의 사례처럼 실수요자가 피해를 보지 않는 선에서 한도를 줄이는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