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수입물가·생산자물가↑···소비자물가 전이 우려
[서울파이낸스 박성준 기자] 미국, 중국 등 세계가 '역대급' 물가지표를 받아들면서 글로벌 인플레이션 공포가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물가 급등세가 '일시적'이라던 중앙은행들의 시각도 사뭇 달라지고 있는 데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장의 신뢰도 점차 무뎌지고 있다. 이미 반 년 넘게 목표치 물가를 웃돌고 있는 우리나라도 대외 의존도가 높은 것을 고려할 때 내년까지 상당한 물가상승이 예상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인플레이션을 바라보는 금융계의 시각이 변하고 있다.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해 6월 이후 경제전망을 변경해 올 때마다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해왔다. 지난 3월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올해 2.4% 수준을 전망했다. 하지만 3개월 뒤 물가상승률을 3.4%로 상향 조정한 데 이어 9월엔 이보다 0.3%p 높은 3.7%로 조정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올해 3월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은 특별히 크거나 지속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6월 들어 "우리가 예상한 수준보다 더욱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9월에는 "현재의 인플레이션 급등은 매우 강한 수요와 마주한 공급 제약의 결과"라며 "글로벌 공급병목 현상이 내년까지 지속돼 인플레이션을 떠받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준금리 조기 인상과는 선을 그으면서도 물가예측에 실패했음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한은도 지난 3월 당시 물가상승률이 1% 중반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했지만, 이달 물가상승률이 목표수준인 2%를 상당폭 상회할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4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당시 "수요 측면의 물가상승 압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달 들어선 "당분간 높은 물가 오름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외에도 영란은행(BOE), 호주중앙은행(RBA) 등도 높은 물가 오름세를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였다.
이처럼 중앙은행들이 물가 전망과 관련해 뒷걸음질치고 있는 이유는 최근 물가지표 흐름이 더 이상 '일시적'으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드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로의 전환으로 수요는 빠르게 회복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시작된 글로벌 공급망 대란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에너지·원자재 가격 급등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돈풀기' 역시 물가 상승을 자극한 요인 중 하나다.
실제로 국내총생산(GDP) 중 소비 비중이 70%가 넘는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 6.2%)는 31년 만에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1년 연속 오름세를 기록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 역시 10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전년동월대비 13.5% 올라 2개월 연속 통계 작성 이래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10월 유로존 물가상승률은 13년 만에 가장 높은 4.1%를 기록했다. 러시아는 6년 만에 최고 수준인 8.1%로 집계됐다. 터키의 경우 공식적으로 물가상승률이 19.9%에 달했지만, 민간에선 오름세가 50% 수준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앞서 경제계는 이에 대해 수요를 쫓지 못한 공급발(發) 영향이라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안정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물가 급등세가 되레 확대되면서 인플레이션을 너무 과소평가 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경제고문은 "최근 연준의 행보는 중앙은행의 향후 정책 운용 방향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키고, 더 나아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경제 의제도 훼손하고 있다"며 "연준이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금융시장에서도 물가 오름세가 더욱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커지고 있다.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가 추가 증산을 거부하면서 현재 배럴당 80달러선인 국제유가는 내년 12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또 세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화지수(달러인덱스)는 15일(현지시간) 95.596까지 올라 지난해 7월21일 이후 약 16개월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연준의 긴축 행보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해 대표적 안전자산이 달러로 돈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올해 연말 역대급 물가상승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달 국내 CPI는 3.2% 올라 반 년째 오름세를 이어간 것은 물론, 10여년 만에 가장 높게 나타났다. 특히 향후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칠 생산자물가 역시 반 년째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으며, 수입물가는 13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이 지표들은 소비자물가의 선행지표로서,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안기태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병목 현상이 해소돼 운임 상승세는 약화될 수 있지만, 생산이 정상화되면 그간 쓰지 못했던 구리나 목재를 비롯한 원자재 주문이 늘어나 가격이 뛸 전망"이라면서 "스태그플레이션(물가는 오르지만 성장률은 둔화되는 현상)이 해소되면 이후 골디락스(비용 하락)가 아닌 리플레이션(생산과 비용이 함께 확대) 환경이 도래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