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격대출 공급계획 매 2~3월 발표···"확대 계획 미정"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적격대출을 희망하는 수요자들의 한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급증하는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턱없이 모자란 탓에 은행 창구에서 번번이 발길을 돌리는 것은 물론, 내 집 마련을 위한 선택지도 줄어들고 있어서다.
곳곳에서 적격대출의 공급량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수급불균형 현상은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정부의 가계부채 억제 기조에 따라 올해 역시 공급량 축소에 무게가 실린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한국주택금융공사(주금공)는 올해 적격대출 공급 총량을 두고 논의를 진행 중이다. 연간 적격대출 공급 계획은 금융위와 주금공이 함께 결정하는데, 통상 2~3월에 발표된다.
적격대출은 10년에서 최대 40년 동안 고정금리로 대출해주는 정책금융 상품이다. 다른 정책금융 상품과 달리 소득제한이 없고, 시가 9억원 이하 주택을 구입할 때 최대 5억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어 금융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편이다.
설정된 총한도에 따라 주금공이 은행·보험사 등에 분기별로 배분하는 방식으로, 많은 수요에도 불구하고 적격대출의 연간 공급량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2017년 12조6000억원에서 2018년 6조9000억으로 줄어든 뒤, 2020년엔 전년(8조5000억원) 대비 절반 가까이 쪼그라든 4조3000억원이 공급됐다. 지난해의 경우 1월부터 9월까지의 공급 규모는 4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적격대출 규모가 해마다 축소되는 것은 금융 당국이 가계부채 관리 강화 차원에서 적격대출 축소로 방향을 설정했기 때문이다. 앞서 당국은 2018년 가계 빚 통제를 위해 적격대출 공급액을 매년 1조원씩 줄이기로 방침을 세운 바 있다.
적격대출이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진다고 보고, 은행 커버드본드 발행실적과 연계·공급해 적격대출을 커버드본드로 점진적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기조는 지금도 유지 중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해를 거듭할수록 소진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적격대출 영업을 개시하자마자 한도가 소진되는 일은 다반사다. 우리은행은 지난 3일 1월분 적격대출 한도를 하루 만에, NH농협은행도 지난 4일 영업 이틀 만에 모두 소진했다. 한도가 아직 남아있는 일부 은행 역시 조기 소진을 예상하고 있다.
문제는 올해 연간 적격대출 공급 총량 역시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가계부채를 줄이고 서민에 우선 지원키로 한 정부가 고소득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적격대출 공급을 늘릴 이유가 없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더 빠듯해진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맞춰야 하는 은행 입장에서도 적격대출은 부담스러운 상품이다. 타 상품 대비 수익성이 적을 뿐더러 적격대출이 실행되면 대출 채권이 주금공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은행의 가계대출로 잡힌다는 점에서다.
채권 매각이 늦어질 경우 총량 규제를 어길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 대출계수에 잡히는 것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당국은 올해 가계대출 총량을 분기별로 관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주금공 역시 당장 공급량을 늘리긴 힘들다는 입장을 보인다. 정부가 적격대출을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설정한 만큼, 한정된 재원으로 서민 지원에 주력해야 한다는 게 그 이유다. 주금공 관계자는 "현재 공급 규모를 늘릴 계획은 없다"면서 "상황에 따라 계획이 바뀔 순 있으나, 공급량을 매년 줄이는 기조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