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박성준 유은실 기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오는 13일 정례회의를 열고 사상 처음으로 '빅스텝'(0.5%p 금리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미 물가 오름세가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6%대에 도달한 것은 물론, 물가가 올라갈 것이란 기대 심리마저 월간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더욱이 미국의 '자이언트스텝'(0.75%p 금리인상) 행보가 이달까지 2회 연속 단행될 것이란 전망에 대내 금리상승압력은 더욱 높아졌다.
사실상 대외 충격발(發) 물가상승압력을 잠재울 수 있는 카드가 금리인상 밖에 없다는 중론 속에 빅스텝 단행은 기정사실화됐다는 관측이다. 다만, 예상보다 빠른 경기둔화 및 침체 가능성을 균형있게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 전문가 10명 중 9명 "한은, 이달 사상 첫 빅스텝 단행"
서울파이낸스가 12일 국내 금융투자회사 소속 거시경제·채권 전문가 10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중 9명은 한은이 오는 13일 금통위에서 사상 처음으로 빅스텝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 1명은 인상 가능성은 높지만 경기와 금융시장에 상당한 불안요인이 있는 만큼 강한 긴축 사인을 보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답했다.
한은이 시장 예상과 같이 기준금리를 현행 1.75%에서 2.25% 수준까지 올리면, 사상 첫 3회 연속 금리 인상 기록을 세우게 된다. 앞서 한은 금통위는 지난해 8월부터 세계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빠르게 금리 인상에 나섰으며, 숨고르기에 들어갔던 올해 2월 이후 지난 4월과 5월에 각각 0.25%p씩 금리를 인상한 바 있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번 빅스텝은 한은 역사상 첫 3회 연속·빅스텝 단행"이라면서 "추가적인 물가상승압력이 높아보이는 만큼, 기대 심리를 낮추기 위해 빅스텝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기대 심리를 낮추기 위해 이달 금통위는 '매파'(통화긴축 선호)적일 것이며, 이미 물가가 예상치를 웃돈다는 점에서 금리인상은 만장일치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이 빅스텝에 나설 경우 지난달 자이언트스텝에 나선 미국과의 내외금리차는 0.5~0.75%p로 벌어지게 된다.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달 재차 자이언트스텝에 나설 경우 한은이 빅스텝을 밟더라고 한미간 금리 상단은 0.25%p 역전된다. 내외금리차 확대는 환율 변동성 및 자본 유출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 빅스텝 강행해야 하는 이유 "물가·기대 심리·원화 약세"
한은이 사상 첫 세 차례 연속 금리인상이자, 빅스텝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크게 △소비자물가 △기대인플레이션 △원화 약세 등 3가지로 꼽을 수 있다.
우선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는 6%(전년동월대비) 상승해 과거 외환위기 시절인 1998년 11월(6.8%) 이후 최고 상승폭을 기록했다. 석유류 가격은 39.6% 상승했고, 항공요금·여행 등과 같은 리오프닝 관련 물가도 두드러졌다.
최근 국제유가가 소폭 내리고 정부의 유류세 인하도 도입됐지만, 이와 동시에 이달부터는 전기요금과 가스가격이 인상되므로 하락압력은 상쇄될 가능성이 높다. 또 사회적거리두기 해제에 따른 수요측 인플레이션 압력도 여름 휴가철을 맞아 더욱 증폭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특히 앞으로 물가가 올라갈 것이란 심리가 가파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금통위의 금리상승압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6월중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9%까지 급등했고, 월간 상승폭(0.6%p)으로는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소비자물가 움직임보다 상대적으로 작기 마련이나, 지난달 CPI가 14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상승폭이 워낙 컸던 탓에 기대 심리도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결국 물가 관련 언급이 가장 중요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통화당국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인플레이션 기대 지표가 급등했다는 것"이라면서 "미국에서도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한 것은 기대 물가가 급등한 영향으로 가파른 금리인상을 밀어붙인 것으로 평가된다. 결국 기대 물가를 어떻게 진정시킬 것인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원화 약세 압력도 부담이다. 원·달러 환율은 시장 내 공포가 극심했던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을 넘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달러당 1300원을 돌파했다. 이미 미국의 가파른 금리인상에 이달 말 한·미 간 금리 역전 현상도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환율 상승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고(高)물가를 진정시켜야 할 한은 입장에선 눈엣가시일 수 밖에 없다.
◇ 금리 오를수록 약해지는 펀더멘털···경기 침체 가능성↑
유례없는 3고(금리·물가·환율) 시대에 빅스텝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나, 현재의 위기를 온전히 걷어낼 수 있는 해결책도 아니다. 무엇보다 가파른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가 상당하다. 금리가 올라갈수록 자본을 끌어오기 어렵고, 시장 내 유동성이 마르면서 경기 활력이 떨어지게 된다.
이미 미국, 유럽 등지에서는 물가가 언제 정점을 찍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 경기 침체 가능성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우리나라 역시 상반기에만 무역적자가 103억달러에 달했고, 올해 4월 기준 전(全)산업 생산은 0.7%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에 대내외에서 바라보는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3%대에서 2%대 초중반으로 하향 조정되고 있다.
ING은행은 국내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성급한 금리인상에 나설 경우 소비 회복을 억제해 경제회복 동력이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회복 단계에 들어선 한국 경제가 경제활동 재개 및 경기부양책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금리인상이 내수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18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 누증 문제도 경기 침체 충격의 뇌관이 될 수 있다. 1859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중 변동금리 비중은 77.3%(잔액 기준)로, 금리가 0.5%p 뛸 때 연간 7조원의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는 한은이 빅스텝 단행 시 기업의 대출이자 부담 규모만 4조원 가량 확대돼 중소기업의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미 대내외 경기 상황은 안좋게 흘러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미국의 경우 경기가 정점을 찍고 하강하는 그림이라지만, 국내 경기는 절대적 수준에서 이미 침체를 향해 가고 있고 시기도 멀지 않았다. 이달 빅스텝을 예상하는 점도 경기 침체와 물가를 동시에 잡기 어려우니 하나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 8월, 4분기 1회씩···올 연말 금리 상단 2.75~3.00% 전망
전문가들은 연내 기준금리 상단을 2.75~3.00% 수준으로 제시했다. 전문가 10명 중 7명은 연내 금리 상단을 2.25%로 내다 봤고 7월 금통위 이후 추가 금리인상 시점은 8월로 예상했다.
구체적인 추가 인상 시그널과 연말 금리 상단 평가는 이번 7월 금통위 결과와 이창용 한은 총재의 입에 달렸다는 데 대부분 전문가가 동의했다. 8월 베이비스텝 단행이 예상되지만, 물가 고점 형성 시기와 경기 상황에 따라 조정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시장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 연구원은 "이번 금통위 기자회견에서 나올 8월 시그널이 가장 중요할 것 같지만 일단 8월 금통위에서는 0.25%p 인상 이후 4분기 내 1회 정도 추가 인상을 예상하고 있다"며 "다만 8월 금통위 전으로 7월 물가가 고점을 못보고 지속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는 데다 유가까지 정리가 안되면 8월에도 빅스텝 단행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우혜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연말 금리 상단은 2.25%로 예상한다"며 "물가가 3분기 내 고점을 형성하고 떨어진다는 가정 하에 7월 기대인플레이션이 안정되는 수준이 되면 8월에는 0.25% 정도 인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금통위가 8·10월 각각 0.25%p씩 인상하고, 연내 2.25%의 기준금리가 형성될 것"이라며 "미국의 경우 하반기 갈수록 소비가 꺾이는 부분도 있기에 재화 소비가 줄면서 수출 경기에도 둔화 움직임이 가시화될 수 있다고 예상한다. 하반기엔 물가보다 경기에 초점이 옮겨가는 부분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