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으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그 원인은 공통점도 있지만 각 국가별로 내재된 차이도 존재한다. 또한 각국의 대응양태도 저마다 달라 지금의 불경기가 끝난 이후 결과가 뚜렷이 달라질 것이라는 예상도 해볼 수 있다.
한국 역시 근래 경험하지 못한 인플레이션으로 걱정이 많다. 정부도 국민도 저마다의 해법을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정부의 대응방식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매우 낮고 전문가들의 평가도 부정적인 경향을 보인다.
현재 세계적으로도 매우 낮은 정부부채를 갖고 있는 한국은 대신 가계부채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이는 이미 2000년대 들어 지속돼온 현상이지만 그 정도가 나날이 더해지고 있다.
문제는 그 원인에 대해 매우 단선적인 분석을 토대로 변화하는 상황을 제대로 대입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가격이 늘 1차적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고 이는 분명한 팩트지만 그 부동산 가격 폭등이 초래한 버블의 생성 원인을 외면하고 있다.
팬데믹을 겪으며 중산층 이하 대다수 국민들의 소득이 감소하면서 계층별 소득격차는 더 벌어졌다. 경기의 사이클이 한번 지날 때마다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의 생리상 당연히 예상되는 일이다.
정부가 할 일은 그런 양극화의 진행을 늦추고 완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마땅하다. 경제개발 초기에는 성장을 견인할 국가사회적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불균형을 유도하는 것이 사회적 비용으로 간주될 수도 있었으나 이미 경제적으로 성숙한 단계에 들어서서도 여전히 대다수 국민의 희생을 전제로 한 국가자본주의적 경제정책을 지속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렇다고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업 민영화는 결코 해법이 아니다. 국민 삶의 최소한을 보장해야 할 사회적 인프라에 속하는 부문을 민영화한 국가들에서 이미 그 폐해들이 고스란히 드러났음을 보았다.
민영화된 미국의 의료보험은 팬데믹 초기 그로 인한 국민 안전상의 취약성이 여지없이 노출됐다. 철도와 전기 등을 민영화한 일본은 시설 노후화에 대한 대책 미흡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건 이후의 사후 수습 등에서 난맥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지금 정부는 공기업 부채 축소를 명분으로 민간에 매력적인 부동산들을 콕 집어 매각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말기에 피크에 이르렀던 공기업의 부채비율은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대폭 낮아졌다는 점을 무시하고 총 자산규모가 늘어난데 따른 부채 총액이 늘어난 사실만 내세우고 있다.
최근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긴축재정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국가채무를 줄이기 위해 가계부채가 더 늘어날 위험성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가계부채가 부동산버블을 키우는 위험은 분명 예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경제상황에서는 오히려 생계형 부채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정부가 급격한 인플레이션 하에서 임금인상 억제를 요구한다면 그 가능성은 더 커진다.
이 경우 가계부채 증가는 금융 부실자산 증가로 이어질 위험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이미 부동산 버블붕괴는 예고되어 있고 그만큼 금융부실화로 발전할 소지가 커지고 있다.
금융부실화의 후폭풍은 다시 국가의 재정투입을 필요로 할 것이고 '작은 정부'는 공염불이 될 공산이 커진다. 그런 악순환을 시작하기보다는 애초에 적절한 재정확충을 통해 그런 상황을 예방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세계 각국이 지난 금융위기 이후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한국은 역으로 정부부채를 억제하는 데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가계부채 증가를 방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선출된 권력의 정치적 요구조차 묵살할 수 있는 기획재정부의 막강한 파워와 낡은 이데올로기가 시대를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을 중심으로 한 현 정부 하에서 더욱 힘을 받고 있다. 30년 전 일본이 수렁에 빠지기 시작할 때보다 현재 한국의 상황은 더 나쁘다는 분석도 있다. 당시 일본은 가계부채보다는 기업부채가 더 문제였고 그 기업부채를 금융이 떠안고 그로인해 부실화된 금융을 정부부채 증가로 해소하려다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악몽을 꾸고 있다.
한국은 영세자영업을 포함한 가계부채가 뇌관이다. 이대로 터지길 기다릴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