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해묵은 '실손 청구 간소화 논란'과 결별
[기자수첩] 해묵은 '실손 청구 간소화 논란'과 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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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민의힘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낡은 규제로 정의하고 개선하겠다고 했는데, 이번엔 진짜 청구 간소화 법이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 

취재를 하다 만난 보험사 관계자의 말이다. 최근 여당인 국민의힘이 최근 보험산업 규제 개선을 약속하며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보험업계는 그 약속이 중요한 게 아니라, 13년째 지속된 청구 간소화 논란과 '진짜 헤어질 결심이 있는지'가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13년째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는 이 논란에 정말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겠냐는 반문도 있다.

실손보험은 피보험자가 병원 치료 시에 부담한 의료비의 일정 금액을 보장하는 보험상품으로 국민건강보험의 보완형으로 도입, 국민의 사적 사회 안전망의 역할을 수행하는 대표보험이다. 올해 3월 기준 실손보험 가입자 수는 3977만명으로, 국민건강보험 가입자(약 5100만명)와 비교해도 77%의 높은 가입률을 보이고 있다. 

제2의 건강보험이라고 불리는 실손보험. 이에 대한 청구 간소화 논란은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실손보험 가입자가 진료를 받고 보험금을 청구하기까지 꽤나 절차가 까다로운 데다 소액의 경우 청구를 하지 않는 사례도 점점 더 많아지자 국민권익위원회는 2009년 실손보험 청구 절차 간소화를 권고했다. 

이후 관련 법안도 꾸준히 발의됐지만 의료계의 생각은 달랐다. 의료계는 '개인의 민감한 의료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점과 '청구는 개인의 판단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내세워 실손보험 청구 절차 간소화에 반대했다. 환자진료 정보가 보험사에 넘어가면 개인 정보 유출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보험사들이 개인의료정보를 가지고 보험 가입을 제한하거나 보험금 지급을 하지 않는 식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올해 5월 정의당 배진교 의원은 의료계 우려를 반영해 일명 '개인 의료정보의 유출 우려가 없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정보유출 문제와 보험사 과잉정보 우려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기관으로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역할을 강조하고, 심평원이 병원으로부터 받은 문서를 보험사에 '비(非)전자문서'로 보내도록 했다. 

이처럼 의료계의 우려를 잠재울 수 있는 법안 발의와 함께 윤석열 정부의 '디지털플랫폼정부안'에 실손보험 간편 청구 정책까지 포함되자 보험업계에선 '이번엔 진짜 되나'라는 기대감이 잠시 높아졌다. 그러나 의료계는 실손보험 청구업무에 공공기관인 심평원이 개입한다는 것은 공적자금이 보험사에 흘러가는 격이라며 또다시 반대표를 던졌다. 이번엔 TF를 구성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 통과를 저지하겠다는 액션 플랜까지 밝힌 상태다.

보험업계는 의료계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반대 이유로 '비급여'를 지목했다. 개정안에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장치를 만든 상태고 실손보험 청구가 간소화되면 보험 소비자의 삶이 훨씬 편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럼에도 의료계가 병원의 주요 수익원 중 하나인 실손보험 비급여 항목의 가격 정보를 내주길 꺼리기 때문에 실손 청구 간소화를 반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자단체 내에서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둘러싼 입장은 엇갈린다. 녹색소비자연대·소비자와함께·금융소비자연맹 등 소비자단체 6곳은 지난해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를 위한 보험업법 개정안 의결 촉구 공동성명서를 발표한 반면 참여연대는 보험업법 개정안은 환자의 건강정보를 보험사에 주는 악법이라고 규정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둘러싼 보험업계와 의료계와의 대립 구도가 십 년 넘게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치권 인사들이 다시 한번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22일 생보·손보 간담회에서 "보여주기식이 아닌 진정한 금융규제 혁신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며 "신산업 분야로의 성장동력 확충, 실손보험 청구 절차 간소화 등 보험업계의 미래를 좌우할 과제들의 진척을 가로막고 있는 낡은 규제들을 당정이 앞장서서 혁신해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혁신'과 '소비자 편의'란 이름으로 호명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이번엔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양 업계도 흉금을 터놓고 대화를 통해 소비자를 위한 최선의 방안을 도출해야 할 시점이다. 해묵은 실손보험 청구 논란과 결별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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