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호성 기자] 채권금리 급등이 이어지면서 공모 회사채 시장에서 미리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들이 줄을 서고 있다. 채권금리 상승세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계열사 지원, 건정성 관리 자금조달 필요성은 한층 커졌다. 일부 금융사들은 채권이면서도 재무제표상 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신종자본증권(영구채) 발행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3년 만기 우량 회사채(AA- 등급)와 같은 만기의 국고채 간 금리 차이(신용 스프레드)는 지난 14일 현재 1.113%포인트(p)로 지난해 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벌어졌다.
코로나19 위기 시기를 제외하면 우량 회사채 신용 스프레드가 이 수준까지 벌어진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2월 이후 처음이다. 우량 회사채마처 신용스프레드가 최고로 치솟으면서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은 만기 1년내 어음빚인 CP 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신용리스크가 낮고 만기가 짧아 가격변동 리스크가 적다는 특성으로 인해 CP 시장은 이미 1년 전부터 팽창해 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업들은 올해 들어 9월까지 총 2조1000억원 어치의 회사채를 순상환했다. 높은 이자 부담에 회사채 발행 물량이 줄어든 데다 정작 발행에 나선 기업들도 목표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실패하는 사례가 잇따른 영향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9월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미매각된 금액을 전체 발행금액으로 나눈 미매각률이 20.5%에 달했다.
금융권은 금리가 더 치솟기 전 공모채 조달을 서두르는 한편 영구채 시장도 노크하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JB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LG유플러스, 한화솔루션 등 금융지주사 및 대기업 계열사들이 대거 공모 회사채 시장에 나온다.
금융지주사들의 경우 자회사인 캐피탈, 저축은행, 증권사들의 자금 소요에 대비하려는 자금 조달을 서두르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관련 유동화증권 시장이 위태로워지면서 유동화증권에 대한 지급보증을 제공한 금융사들의 건전성 관리 압박도 커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JB금융지주는 이달 17일 1000억원 목표로 수요예측을 진행한다. 오는 25일 발행 예정이다. 우리금융지주는 18일 2100억원을 목표로 영구채 수요예측을 실시한다. 수요예측이 흥행하면 발행물량을 최대 3000억원까지 증액할 방침이다. DGB금융지주는 24일 최대 1500억원 목표로 영구채 수요예측을 진행한다. 지난달에도 신한은행, 우리은행, 한화손해보험, 제주은행 등이 신종자본증권을 줄줄이 발행했다.
영구채는 주식과 채권 성격을 동시에 갖지만 재무제표 상으론 자본으로 인식된다. 이에 금융지주들은 영구채 발행을 통해 자본 확충과 함께 자기자본비율(BIS), 자회사 출자여력을 나타내는 이중레버리지비율 상승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증권사들도 공모채 발행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교보증권은 지난달 회사채 조달을 연기한 지 한달여만에 2000억원 규모의 공모 회사채 발행에 나섰다. 교보증권은 지난달 말 발행을 목표로 동일한 규모의 회사채 조달을 준비했지만 한화투자증권이 2년물 채권을 5% 이상의 금리로 찍는 것을 확인하자 연기를 결정한바 있다. 금리 상승세가 가팔라지자 시장 상황을 좀 더 살핀 후 조달에 나서겠단 계획이었지만 한달여만에 공모채를 발행하기로 자금조달 계획을 수정한 것이다.
대기업 계열사, 금융사들도 선제적 자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한화솔루션은 이달 중 최대 4000억원 규모를 발행할 예정이다. LG유플러스는 19일 수요예측을 통해 최대 3000억원 어치 공모채 발행에 나선다.
이외 SK인천석유화학, SK증권, 교보증권, 한온시스템, 한진, 통엥에코파워(한화에너지보증) 등도 공모채 발행 준비로 분주하다. 내년 성장률이 저하되고, 경기 침체 가능성까지 더해지면서 이처럼 미리 자금을 확보해두겠다는 기업들이 늘고 있지만 금리 인상과 채권시장 침체 등으로 상황은 녹록치 않다.
한편 금융당국은 회사채·기업어음(CP) 시장이 급랭하자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재가동 검토에 들어갔다. 20조원 규모를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0조원 규모의 증권시장안정펀드 조성에 이어 채안펀드까지 금융당국이 쓸 수 있는 시장 안정화 수단을 총동원하는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