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서울시가 재개발·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의 시공사 선정을 앞당기기로 하면서 건설사들도 일감확보에 청신호가 켜졌다. 특히, 수주할 수 있는 사업지가 늘어나면서 건설업계도 피 튀기는 수주전보다는 선별수주를 통해 합리적인 비용으로 입맛에 맞는 좋은 일감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다만, 브랜드 선호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만큼 중소건설사들의 일감 확보는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앞으로 모든 정비사업 구역에서 '조합설립 인가' 후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다. 정비사업의 절차는 크게 '안전진단 통과 → 정비구역 지정 → 조합설립 인가 → 사업시행계획 인가 → 관리처분계획 인가 → 철거 및 착공'으로 이뤄지는데 지금까지 서울에서 추진된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사업시행계획 인가이후에나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례 개정이 완료되면 모든 정비사업장에서 조합을 만든 후 바로 시공사를 뽑을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조합들의 자금조달이 원활해 지는 것은 물론 시공사의 구체적인 시공계획이 나오고 건축·교통 심의 절차를 밟게 되는 만큼 사업 진행에도 속도를 붙일 수 있다.
때문에 건설사들은 이 같은 서울시 방침에 환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시공사 조기 선정으로 미래 먹거리 사업 추진 속도를 앞당길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특히 시공사가 사업 초기부터 시공 계획과 설계안에 직접 참여할 수 있고 조합도 자금 여력이 생기면서 양측 모두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공권을 따내기 위한 건설사 간 경쟁도 다소 완화될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조례 개정으로 시장이 확대되면서 무리한 수주전을 벌이거나 조합원들을 사로잡기 위해 불법까지 벌어지는 문제가 일부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건설사 간 선별 수주를 통한 ‘나눠먹기’가 가능해져 건설사 중심의 시장 흐름이 더 강화될 전망이다. 또 승자독식 구조 하에서 모든 영업력을 집중해 경쟁에 나섰다가 패배할 경우 발생할 손실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여기에 사업 추진이 빨라지면서 보다 예측가능성이 높아지고 실적에 선반영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점이 있다는 평가다.
다만 실수요자들이 브랜드 아파트 선호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는 만큼 대형 건설사들의 수주 쏠림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 리서치 업체 리얼투데이가 설문조사기관을 통해 전국 20~60대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2023년 분양시장 수요자 인식 조사'를 진행한 결과, 전체 51.9%가 분양시장에서 브랜드가 수요자들에게 '보통 이상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다. 이어 △매우 영향을 미친다 26.1% △보통 정도 영향을 미친다 20.1% 등의 순이었다. 즉,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100명 중 98명은 청약 시 브랜드에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다.
이같은 상황을 고려했을 때 대부분의 조합들은 중소건설사들 보다는 재무나 브랜드 파워를 가진 대형건설사들을 선택이 쏠릴 수밖에 없다. 대형 건설사들 입장에서는 넘쳐나는 사업장 중 수익성이 좋은 곳을 골라 수주할 수 있게 되는 만큼 일부 사업장을 다른 건설사들과 나눠먹을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
다른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현재 시공사 선정이 사실상 인기투표인 만큼 하이엔드 브랜드를 가진 대형 건설사들이 시공권 확보에 유리하다"며 "하지만 조례가 개정되면 사업지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건설사들도 선별 수주 경향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브랜드 아파트 선호현상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 대형건설사들의 쏠림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라며 "사업지가 늘어나는 만큼 수주가 쏠리는 일부 건설사들의 경우 일부 사업지를 다른 건설사들에게 몰아주는 현상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시공사 선정 조기화에 따라 불투명한 공사비 책정, 조합과 시공사 간 비리·유착, 과도한 시공사의 권한과 간섭 등 과거 발생했던 문제들이 다시금 불거질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은 "시공사 선정을 뒷단으로 미뤄서 발생했던 설계 변경 등에 따른 매몰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시공사의 전문성·신용도 기여로 사업 추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과거 문제가 됐던 조합과 시공사 간 결탁·비리 등은 최소화하는 제도적 보완과 함께 주먹구구식으로 과거 방식을 고수하는 건설사와 조합들도 자구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관련 시 관계자는 "'제도 개선 특별팀'을 운영해 부작용을 방지할 안전장치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