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의 국내 출산율이 최저 수준인 0.78%라고 언론을 통해 발표됐다. 그러면서 나온 여당의 현실성 없는 정책대안들이 또 구설수에 올랐다.
한국의 출산율은 꾸준히 감소해왔으니 최신 통계가 최저 수준인 것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계획경제 시절에는 정책적으로 출산율을 떨어뜨리기 위해 노력을 경주했다. 이를 '가족계획'이라고 불렀고 정부 산하에 가족계획협회가 만들어져 저출산을 독려하는 홍보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처음 출산율 조절에 나설 때는 한 부부에 아이 셋이 목표였다가 70년대 초에 '둘만 낳아 잘 기르자'로 바뀌었고 어느 때부터였던가 하나만 낳기로 극단적인 목표가 세워졌다. 정부의 강제성이 셋째 아이부터는 불이익을 주는 수준으로까지 확장되면서 한동안 셋째를 낳은 부모들을 매우 불편하게 했으나 다행이도 그런 제한은 지속되지 않았다.
계산상으로 보자면 부부 두 명이 두 명의 자녀만 낳으면 인구가 지속될 것 같지만 실제로 둘까지로 강제할 경우 실질적으로는 인구 감소가 시작된다. 원해서든 아니든 한 자녀로 그치는 가정도 있기 마련이니까.
좁은 국토, 과밀한 인구가 그런 극단적인 인구조절 정책을 펴게 만들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인류사에서 언제나 인구수가 국력의 척도 중 하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 성급한 인구증가 억제 정책이었던 측면도 있다. 지금의 출산율 저하가 꼭 그 당시의 정책홍보의 영향이라고만 말 할 수는 없지만 결혼하면 반드시 자녀가 있어야 한다는 의식이 허물어지는데 관련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물론 현재의 낮은 출산율의 원인을 단순히 가치관의 변화에서 찾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일이다. 자살률 세계 1위인 나라, 통계 외의 과로사가 적잖은 현실에서 아직 국제적 기준보다 긴 노동시간을 다시 늘릴 궁리나 하는 나라, 결혼하려 해도 부모의 도움 없이는 생활공간조차 마련하기 힘든 나라, 공교육을 무력화시키도록 사교육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사회에서 자녀 출산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얘기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해법다운 해법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세대의 인구유입이 줄어들면서 노령인구 비율은 급격히 높아지고 연금을 비롯한 복지 부담은 늘어난다. 인구가 집중된 서울 수도권을 제외하면 전국토가 비어간다. 시골로 갈수록 빈집도 늘고 따라서 폐교도 는다. 그러니 더더욱 농촌으로의 인구유입은 가로막힌다.
인구절벽이란 15세에서 64세까지의 인구비율이 급감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달리 말하면 생산인구가 감소한다는 것이고 사회적 활력을, 성장동력이 떨어져 갈 것이라는 예고다.
인구절벽에 대한 우려는 이미 오래전 고령화 사회로 진입할 때부터 나왔다. 정부도 지난 15년간 280조원의 예산을 쏟아 부었으니 손 놓고 있었다고 비난만 할 수도 없다. 다만 정책이 어딘가 핀트가 맞지 않아 계속 똥볼만 찼다는 게 문제다.
출산율 감소는 현재 거의 전 세계적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유독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어서 그 원인에 대한 정부의 제대로 된 진단과 대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야근이 잦은 직장의 여성들은 애를 낳아봐야 종일을 남의 손에 맡겨 기를 수밖에 없고 스스로는 단지 생모만 될 뿐 제대로 된 부모노릇을 할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여성들은 그나마 소득이 웬만한 수준은 되는 계층이고 소득이 낮은 계층에서는 아예 경제적 이유로 아이를 낳아 기를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고 말한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에는 돈과 시간과 심리적 안정까지 여러 요소들이 두루 필요하다. 이를 위한 사회적 보장 없이 단편적인 떡밥 던지기 식의 대책을 내놓는 것은 젊은 세대를 우롱하는 짓이 될 뿐이다. 영·유아를 돌볼 보육시설은 부족하고 초등학생들의 방과 후 시간을 공교육이 제대로 흡수해줄 여건도 미흡한데 이런 인프라 부족은 외면하고 책임 있는 자리에서 나오는 소리들이 엉뚱하면 문제 해결은 요원할 뿐이다.
개별 가정에 대한 지원 방안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환경조성은 더 중요한 선결과제일 수 있다. 학교에서는 부모들의 학습참여를 요구하고 직장에서는 그런 학부모 역할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사회에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