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회장 말도 안 먹히는데···책무구조, 대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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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뿐인 금융사 '내부통제 강화'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금융그룹들이 일제히 이달 하반기 경영전략회의를 열고, '내부통제 강화'를 핵심 과제로 내걸었다. 최고경영자(CEO)들은 펀드 불완전판매, 대규모 횡령 등 지난 몇 년간 발생한 각종 금융사고로 바닥까지 떨어진 신뢰를 빠르게 회복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100%' 완벽한 내부통제 달성을 약속한 CEO도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약속은 불과 며칠 만에 공염불이 됐다. 지난해 700억원대 횡령 사건으로 논란이 됐던 우리은행에서 올해 또 횡령 사고가 터지면서다.

앞서 이달 중순경, 올해 5~6월 우리은행 전북 소재 지점에서 근무하던 한 직원이 7만달러(약 9000만원) 가량을 횡령했다가 적발된 사실이 밝혀졌다. 해당 직원은 가상자산 투자를 목적으로 지점 내 보관중이던 영업자금에 손을 댄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은 한층 강화된 내부통제 제도를 통해 해당 직원의 횡령 사실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고 자찬했다. 그러나 이번 횡령이 올해 2월 우리금융 회장으로 선임된 직후부터 줄곧 내부통제를 강조해온 임종룡 체제 아래에서 일어났단 점에서, 이같은 자찬이 어불성설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00% 완벽한 내부통제가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회의감도 따라붙는다.

현직 은행원이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에 가담한 경우도 있었다. 지난 13일 서울동부지검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은 190개 대포통장을 국내외 보이스피싱 조직에 유통한 일당을 대거 검거했다고 밝혔는데, 이 중에는 대포통장 개설을 도운 현직 은행원도 포함됐다.

횡령이든 보이스피싱 가담이든 직원 개인의 일탈이라고 치부하기엔 은행을 믿고 돈을 맡긴 고객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은행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개인의 일탈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은행 내부 시스템에서 걸러내지 못했다는 것은, 결국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은행들의 말뿐인 '내부통제 강화' 약속에 신뢰를 빠르게 회복하기란 요원해보인다. 최근 당국이 나서 금융사고에 대한 보다 강력한 책임과 제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압박 수위를 높인 배경이기도 하다. 당국은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미흡 문제를 뿌리뽑기 위해 '책무구조도'를 중심으로 금융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책무구조도란 금융회사 임원 20~30명이 담당하는 구체적인 직책별 책무를 지정해 문서화한 것이다. 담당 업무에 따른 내부통제 책무를 배분해 보다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이를 통해 금융사고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다. 기존에는 금융사고 발생 시 은행 자체 내규에 따라 책임 소재를 파악한 후 제재를 했지만, 앞으로는 법령(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 따라 보다 강력한 조치가 이뤄지게 된다. 

문제는 책무구조도 도입 시점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책무구조도를 기반으로 보다 강력한 제재가 이뤄지려면 이같은 내용이 담긴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업계 의견을 수렴한 후 속도감 있게 입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지만, 구체적인 도입 시기를 제시하진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책무구조도 선제 도입을 밝힌 금융회사들도 실제 도입 시점은 입법 이후로 보고 있는 상태다. 한 금융그룹 관계자는 "입법 이전에 자체적으로 책무구조도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실제 개정된 법안보다 부족하거나 상충되는 부분이 있으면 안되기 때문에 우선 입법되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금융회사들은 책무구조도 도입 전 발생한 금융사고에 대해선 한층 강화된 내부통제 시스템과 내규에 따라 책임 소재를 파악하고 조치하겠단 계획이다. 그러나 내부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이같은 설명은 매년 반복되는 금융사고에 신뢰를 잃어버렸다. 

금융회사들의 자체 내부통제 강화 움직임 만으론 금융사고 재발을 막기에 역부족이다. 하루빨리 책무구조도가 도입될 수 있도록 금융 당국과 입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당사자인 금융사도 입법을 핑계로 내부통제를 소홀히 하면 더 떨어질 신뢰마저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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