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폐쇄 조건 영향···이달말부터 통폐합 점포 공시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주요 시중은행들의 영업점 통폐합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점포 구조조정을 통해 이미 적지 않은 곳의 셔터를 내린 상태인 데다 금융 당국이 점포폐쇄 문턱을 높이는 등 실질적인 조치에 나서면서 은행권의 점포 축소 흐름에도 제동이 걸린 모습이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이 올 6월부터 현재까지 통폐합한 곳은 총 4곳(출장소 포함)에 그쳤다. 신한은행이 프리미어광화문, 프리미어청담 등 3곳의 출장소를, 하나은행은 익산중앙출장소 1곳을 통폐합했으며, 나머지 은행은 기존 영업점을 그대로 유지했다.
8월 이후 영업점 통폐합을 계획 중인 점포는 아직 한 곳도 없다. 은행들은 영업점 폐쇄 시 3개월 전부터 고객에 이를 통지해야 하는데, 4대 은행은 지난 6월을 마지막으로 영업점 통폐합 관련 공지를 내지 않았다. 적어도 올해 11월 말까지는 추가로 문을 닫는 영업점이 없다는 얘기로, 연말까지 영업점 폐쇄를 계획하고 있지 않다는 게 은행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는 코로나19와 비대면 금융 활성화 등을 이유로 영업점 축소에 속도를 내던 이전 모습과 전혀 다른 양상이다. 앞서 4대 은행은 지난해 말까지 최근 3년간 출장소를 포함해 642곳의 문을 닫은 바 있다. 올 상반기에도 은행 운용에 드는 고정비용인 점포 임차·운영비와 인건비 등을 줄이고자 내점 고객이 적은 곳을 중심으로 총 83개의 영업점을 줄였다.
경영 효율화 측면에서 영업점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은행들의 기본 방침에는 변화가 없는 상태다. 그럼에도 하반기 들어 상황이 급변한 것은 금융 당국의 엄포 영향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불필요한 영업점을 많이 정리한 상황인 데다 점포 폐쇄 문턱을 높인 당국의 조치로 속도 조절이 불가피해졌다는 설명이다.
당국은 지난 4월 '은행 점포폐쇄 내실화 방안'을 내놨다. 해당 방안에는 은행이 점포폐쇄를 결정하기 전에 실시하는 사전영향평가를 한층 강화하고, 점포를 폐쇄할 경우엔 금융소비자가 큰 불편 없이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소규모 점포나 이동점포 등을 대체수단으로 마련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담고 있다.
자체적으로 폐쇄되는 점포 고객을 대상으로 향후 발생할 불편 등을 보상할 수 있는 직접적인 지원방안도 제공하도록 했다. 예금 또는 대출 상품에 일정기간 우대금리를 제공하거나 각종 수수료를 면제하는 방식이다.
당장 이달 말부터는 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 현행 예대금리차 공시처럼 은행별 점포 폐쇄 현황이 공시된다. 전 분기 말 지점·출장소 현황과 분기 중 신설·폐쇄 현황, 폐쇄 결정 이유, 대체 수단까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은행권은 분기별 비교 공시가 활성화될 경우 점포 축소화 움직임에 더욱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타 은행과 자주 비교 대상에 오르게 되는 만큼 이전만큼 잦은 점포 폐쇄를 추진할 수 없게 될 것이란 게 이들의 시각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몇 년 동안 점포 구조조정을 시행하면서 일단 정리할 곳들은 통폐합을 마친 상태"라면서 "특히 정부가 은행권의 사회적 책임을 많이 언급하고 있을 뿐더러 점포폐쇄 문턱을 많이 높인 상태여서 연말까지는 점포 폐쇄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경쟁 은행과 수치로 비교된다는 건 큰 부담 요소"라며 "장기적으론 점포를 줄여나가는 게 불가피하지만, 절차가 까다로워졌기 때문에 한동안은 통폐합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