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늘어난 공사비에···'갑-을' 바뀐 도시정비사업 
[초점] 늘어난 공사비에···'갑-을' 바뀐 도시정비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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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최대어 '노량진1구역', '여의도 공작' 시공사 못 찾아
사업성 고려한 선별 수주 심화···알짜 입지에선 과열 경쟁도
공사비‧원가율 급증한 가운데 '돈 없는 조합'은 협상력 약화 
서울의 한 아파트 건축 공사 현장. (사진=박소다 기자)
서울의 한 아파트 건축 공사 현장. (사진=박소다 기자)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고금리·고물가 상황 속에서 미분양이 속출하는 가운데 건설업계 주 먹거리였던 도시정비사업에서 선별 수주 기조가 고착화될 전망이다. 건설사들이 '선택과 집중'에 나서면서 정비사업 시공사 찾기에 난항을 겪는 한편, 사업성이 확실한 곳들은 오히려 경쟁이 과열되는 모양새다. 이 가운데 정비업계가 '건설사 우위 시장'으로 달라졌다는 시각도 있다. 

22일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전국 건설사들의 재건축·재개발 수주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7조3910억원)보다 45% 급감한 3조9993억원으로 집계됐다. 민간은 7조498억원에서 3조5269억원으로 거의 반토막났다. 작년 한 해 동안 도시정비사업에서 4조원 이상 수주고를 올린 건설사는 6곳에 달했지만 올해는 포스코이앤씨(4조3150억원) 단 한 곳에 불과했다. 경기 불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올 들어 건설사들이 정비사업에서 소극적인 행보를 보인 탓이다. 

실제 올 하반기 서울 정비사업 중 최대어로 꼽히는 노량진1구역 재개발과 여의도 공작아파트 재건축의 시공사 선정이 모두 불발됐다. 지난 20일 진행된 노량진1구역은 입찰 참여 건설사가 1곳도 없어 시공사 선정이 무산됐다. 노량진 뉴타운 내 단지 규모가 가장 크고 입지도 좋은 곳으로 평가되며 삼성물산과 GS건설의 수주전이 예상됐지만 조합 갈등, 낮은 공사비 등 이유로 두 건설사 모두 입찰에 나서지 않았다. 

같은 날 서울 여의도 공작아파트 시공사 선정 입찰은 대우건설만 참여 의향서를 제출해 유찰됐다. 지난 9월에 이어 두 차례 유찰로 수의계약 요건이 성립되는 만큼 조합은 연내 대우건설과 수의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치열한 수주 경쟁이 이뤄지는 곳도 있다. 서울 여의도에서 처음으로 시공자 선정에 나선 한양아파트 시공권을 두고 현대건설과 포스코이앤씨가 자사의 하이엔드 브랜드 '디에이치', '오티에르'와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 수주전에 나섰다. 포스코이앤씨는 3.3㎡당 공사비 798만원, 총공사비 7020억원을 제안했고 총사업비 1조원 책임 조달도 약속했다. 현대건설은 공사비 3.3㎡당 824만원, 총공사비로 7740억원을 제시했으며 '소유주 이익 극대화' 전략도 내세웠다.

송파 가락프라자아파트 재건축사업도 건설사 간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20일 가락프라자 시공자 선정 입찰 마감 결과 GS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이 입찰에 참여해 2파전이 성사됐다. GS건설은 3.3㎡당 공사비로 718만원, 현대엔지니어링은 780만원을 제시했다. 당초 현대엔지니어링은 '디에이치' 브랜드를 사용하려고 했으나 현대건설 측의 사용 불가 입장에 따라 '힐스테이트' 브랜드를 제안했다. 

건설사들은 주요 알짜입지 시공권 확보에 사업 역량을 집중하면서 과열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현대건설과 포스코이앤씨가 뛰어든 한양아파트 재건축 수주 경쟁 과정에서 현대건설은 입찰 마감 전부터 온라인 사전홍보 활동, 조합원 개별 접촉 등이 발각돼 홍보지침 위반 '주의' 조치를 받았다. 또 양사 모두 분양 수익을 홍보해 입찰 지침 위반 논란까지 일었다. 현재 서울시는 시정 조치에 나섰고 지난달 29일 예정이던 시공사 선정 총회도 취소된 바 있다.

경기 침체 장기화로 건설사들의 선별 수주 전략은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현재 고금리에 자금 부담이 커졌고 공사비‧인건비 등 비용이 늘어난 데다 경기 불황까지 장기화되면서 보수적으로 (수주에)들어가는 경향이 커졌다"면서 "사업성이 좋거나 경쟁력이 있는 주요 입지에선 각 건설사들이 사업 역량을 집중하며 오히려 경쟁이 치열해지고 과열되는 사례들도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사업 주도권이 사실상 시공사에 넘어갔다는 관측도 나온다. 선택권이 없는 조합에서는 경쟁방식 때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받을 가능성이 줄고 협상력도 약화한 상황에서 시공사에 유리한 제안이라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정비사업 문제의 핵심은 급증한 공사비라고 지적한다. 시공사와 조합 간 공사비 문제를 놓고 견해차가 발생하면서 자금 주체인 시공사 협상력이 커질 수밖에 없단 의견이다. 실제 공사 자재인 철근 단가는 톤당 90만원대 수준이고, 레미콘 단가는 ㎥당 8만원 후반대로 전년보다 25% 올랐다. 원자잿값 매입 가격이 늘어나면서 주요 대형건설사의 매출원가율은 현재 90%를 넘어선 상태다. 이 상황에서 발주처인 조합으로부터 늘어난 공사비를 보상받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선별 수주 경향이 커진 상황에서 돈을 조금 쓰면 시공사가 갑이 되고 공사비를 높여 원하는 조건을 제시할 수 있으면 조합이 갑이 된다"며 "공사 계약 시 공사비 증액분에 대한 조건을 넣는 등 쌍방 합의를 통해 이를 분담하면 되지만 현실적으로 사업장마다 여건이 다르고 돈이 없는 단지는 사업 추진이 사실상 어렵게 된다"고 말했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사비 자체가 많이 올라갔는데 발주처인 조합은 비용이 과도하게 높다고 느끼고 시공사들은 적자 위험이 있기 때문에 양측의 시각차가 존재한다"면서 "늘어난 비용에 대한 분양가를 감당할 수 있는 수익성‧경쟁력 좋은 지역에서만 수주 경쟁이 치열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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