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억원대 마피 속출···하이엔드 앙사나레지던스여의도도 관심無
"고금리 속에 주택 규제 완화까지 더해져 시장 상품성 떨어졌다"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과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투자금을 마련해 생활형숙박시설(생숙)을 하나 분양 받았는데 아주 골치예요. 당시엔 1억~2억원 넘는 웃돈을 기대하는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시장이 완전 무너졌어요. 실거주도 안되고 팔리지도 않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어요."
2021년 집값 상승기에 덩달아 호황이었던 생숙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청약 최고 경쟁률이 수천대 1이었던 생숙 가운데선 분양가격에 비해 호가가 억대 이상 떨어진 매물이 속출하고 1년반 전에 분양한 생숙 중에 아직도 분양이 안된 곳도 많다. 이처럼 생숙 시장이 침체되면서 거래 움직임은커녕 입질조차 없는 상황이 이어지며 생숙 투자자들은 망연자실하고 있다.
10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시 강서구 마곡동에 들어설 예정인 생활숙박시설 '롯데캐슬 르웨스트' 전용면적 88㎡ 매물이 호가 14억5980만원에 나왔다. 당초 분양가보다 1억6220만원 낮은 '마피' 매물이다. 이같이 1억원 이상 싼 가격의 마피 매물은 수십개에 달했다. 사실상 대부분 계약금을 포기한 셈이다.
실제 기자가 이날 공사가 한창인 롯데캐슬 르웨스트 인근 공인중개업소 몇 곳을 둘러본 결과, 생숙 시장 분위기는 쌀쌀한 날씨만큼 썰렁했다. 당장 이 생숙은 올해 8월 준공돼 입주가 시작되지만 거래는커녕 문의조차 없는 상황이다. 3년 전 청약 당시만 해도 58만여명이 몰려들어 6049대1의 최고 경쟁률(전용 111㎡)을 보인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마곡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전부 계약금을 포기해 마피로 내놓고 있다고 보면 된다. 롯데캐슬 르웨스트 경우 마피 물건이 40~50건가량 있는데 단 한 건의 거래도 없었다"면서 "고금리 상황에서 최대로 수익을 낸다 해도 수익률이 4% 수준으로, 대출 금리를 쫓아갈 수가 없는데 누가 생숙을 사려고 하겠냐"고 전했다.
이뿐 아니라 생숙시설의 마피 매물은 속출하고 있다. 이날 기준 네이버 부동산에는 2017년 말 해당 면적대 분양가가 1억4400만~1억6000만원 수준이던 인천 송도신도시에 위치한 생숙 '송도랜드마크푸르지오시티' 전용 22.5㎡가 1억원 수준에 올라와 있으며, 힐스테이트송도스테이에디션의 경우 약 6800억원의 마피 매물이 나왔다. 경기 고양시 일산 '더샵일산일로이', 경기 안산 '힐스테이트시화호라군인테라스' 등 수도권 생숙 분양권이 팔리지 않으면서 1억~2억원대 마피 거래 시도가 늘어난 상황이다.
하이엔드 시설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오는 2026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들어설 예정인 '앙사나레지던스 여의도'의 분양가는 전용 면적 40.08㎡‧15억원대부터 전용 103.71㎡‧60억원대까지 다양한 가격대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지난 2022년 11월 분양 시작 이래 현재까지 분양을 받은 사람이 드물어 '무피(웃돈 없이 매매)' 거래 시도도 늘었다. 여의도 내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현재 분양도 거의 안되는 상황이고, 생숙 관심도가 많이 떨어졌다. 여의도 내 생숙을 취급하는 중개업소도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 밖에 호황기에 생숙이 무더기로 지어진 부산을 비롯해 속초, 양양 등 지방에서는 마피 물량 적체가 심각하다. 분양 당시 관광지 '세컨드 하우스'로 각광받았으나 입주 시기가 되자 처분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레지던스'라고도 불리는 생숙은 건축법과 공중위생관리법 적용을 받아 장기 투숙객들의 수요에 맞춰 취사와 세탁 시설을 갖춘 숙박시설이다. 아파트와 달리 전매제한 등 규제가 덜하고 당첨만 되면 계약금 10%만 낸뒤 분양가에 웃돈(프리미엄)을 얹어 팔 수 있기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청약통장이 필요없고 대출제한도 받지 않는 등 진입장벽이 낮은 것도 투자자들이 대거 몰린 이유였다.
시장이 급변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고금리로 부동산 경기가 위축한 데다 거주가 불가능한 점, 예상보다 낮은 수익률, 숙박업 운영의 어려움 등으로 설자리가 줄어든 상황이다. 부동산시장 호황기때 10% 계약금만 쥐고 대출로 생숙 투자에 나선 이들은 최근 금리가 연이어 상승하면서 막대한 이자 부담에 시달리게 됐다. 월세로 돌리는 것도 쉽지 않다. 최근 금리가 6%가까이 치솟으면서 대출이자가 월세 수입을 넘어서는 일이 빈번한 상황이다.
실제 한국부동산원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오피스텔‧지식산업센터 등 상업용 부동산의 투자수익률은 0%대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는 투자자의 대출이자 비용을 반영하지 않은 투자자본 대비 임대수익을 나타낸 것으로, 이자 비용 반영 시 마이너스 수익률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이미 상품성이 떨어진 상황에서 생숙 시장이 다시 살아나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생숙은 시장에서 이미 상품성을 잃었다. 전세도 안 되고 거주도 안 돼 주택의 기능성도 떨어지는데 지난해 정부의 1.3 대책 이후 부동산 규제가 대폭 풀리자 수요자들이 주택시장으로 몰려가는 상황"이라면서 "수익형 부동산으로 활용하려고 해도 이미 투입된 비용 자체가 크다 보니까 수익을 내기도 힘든 상황에서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분간은 생숙뿐 아니라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 등 수익형 아파트, 비아파트의 경우 부진이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