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 대표 시절 노조와 단체협약···"유연한 대화 기대"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삼성전자가 반도체 수장을 교체하는 원포인트 인사를 단행했다. AI 반도체의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준데 대한 체질개선의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삼성전자 DS부문이 HBM 경쟁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1위 사업자의 지위를 찾기 위해서는 노사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숙제가 있다.
신임 DS부문장이 된 전영현 부회장은 회사 내에서도 '반도체 기술통'으로 알려졌다. 전 부회장은 2000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에 입사해 D램과 플래시 개발, 전략 마케팅 업무를 거쳐 2014년부터 메모리 사업부장을 역임했다. 2017년부터는 삼성SDI 대표이사를 맡아 배터리 사업 흑자를 이끌었으며 올해 초에 삼성전자 미래사업기획단장으로 위촉됐다.
증권가에서는 DS부문장 교체에 대해 HBM 경쟁력 확보와 파운드리 실적 개선을 노린 것으로 보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 하락과 파운드리 사업 부진 타계를 위한 분위기 쇄신 차원의 인사로 판단된다"며 "DS 부문 신임 부문장은 우선 HBM 신제품 개발, 수율 향상에 주력하는 동시에 파운드리 실적 개선에 초점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전 부회장은 이 같은 과제와 함께 노사 갈등 불씨도 꺼야 한다. 신제품 개발과 수율 향상을 바탕으로 한 실적 개선이 최우선 과제인 상황에서 노조가 파업까지 이르게 된다면 갈 길 바쁜 삼성전자에게는 큰 피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삼성전자 노사협의회는 올해 평균 임금인상률을 5.1%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는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요구한 6.5%에 못 미치는 수준이며 유급휴가 1일 추가 요구도 제외됐다.
또 성과급에 대해서도 사측의 산정 기준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산정 기준 공개를 요구했다. 삼성전자 DS부문은 지난해 15조원 가까이 영업손실을 냈다가 올해 흑자전환해 11조원대 영업이익으로 목표치를 설정했다. 이 같은 실적개선에도 사측은 성과급을 지급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전삼노 관계자는 "영업이익이 11조원에 이르더라도 직원들의 성과급이 0%가 되는 산정기준을 공개해야 한다. 회사 측은 경제적 부가가치(EVA)에 따라 산정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회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2021년에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한다는 산정 기준을 공개해 비교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삼노는 지난달 1일 화성사업장에서 경계현 대표이사에 항의방문을 시도했으나 회사 측과 몸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어 같은 달 5일 진행된 쟁의 찬반투표에서는 투표 참여자 97.5% 중 74%가 찬성해 쟁의권을 확보했다.
쟁의권 확보에 따라 삼성전자에서는 창사 이래 첫 파업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대됐으나 전삼노 측은 17일 화성사업장 부품연구동 앞에서 노조 집회를 열며 단체행동을 펼쳤다. 전삼노는 오는 24일에도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집회를 예고했다.
전삼노 측은 파업에 대해 "한국사회와 국제사회에서 삼성전자의 영향력이 매우 큰데 파업이 일어난다면 타격은 사측뿐 아니라 노측과 국민들까지 입을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사측에 전향적 변화가 없다면 결국 파업으로 가는 길로 내모는 것"이라며 사측에 대화를 요구했다.
당초 전삼노는 경계현 DS부문장을 상대로 대화를 요구했으나 전영현 부회장으로 수장이 교체되면서 대화가 재개될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 부회장은 삼성SDI 대표이사로 재직하던 2021년 삼성SDI울산공장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단체협약은 1년 가까이 진행될 정도로 진통을 겪었으나 조합원 투표서 97.02%의 찬성률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이어 2022년 10월에는 노사가 첫 임금협약을 체결했으나 당시에는 최윤호 사장으로 대표이사가 바뀐 후였다.
삼성SDI서 실질적인 노사협약은 대표이사의 권한을 위임받은 손우영 당시 중대형사업부 인사팀장이 맡았다. 다만 전 부회장은 대표이사 자격으로 노조 설립과 노사 갈등을 지켜본 만큼 이번 삼성전자 노사 갈등에 더 유연하게 대처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경계현 사장의 경우 2021~2022년 삼성전기 대표이사로 재직한 적이 있으나 당시에는 노조가 없었다"며 "경 사장보다는 신임 전 부회장이 노사관계를 더 유연하게 풀어낼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한편 삼성전자는 노조와 관련해 성실하게 소통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는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노사 갈등과 관련해 "언제나 대화의 창을 열어두고 성실하게 소통에 임해 노조가 파업에 이르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이런 노력에도 노조가 파업할 경우 노동관계 법령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경영 생산 차질을 최소화할 계획"이라며 "무엇보다 상생의 노사 관계 구축을 최우선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