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AI 밸류체인 리더십 강화해야···그린·화학·바이오 질적성장"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SK그룹이 AI와 반도체를 중심으로 사업 재편에 나선다. SK하이닉스가 그룹의 미래를 짊어질 운명을 떠안으면서 그동안 전략적으로 투자한 배터리 사업도 일부 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SK 회장은 지난달 28~29일 경기도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린 그룹 경영전략회의에서 글로벌 사업 현황을 경영진들에게 전달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최 회장은 현재 미국 출장 중인 가운데 이날 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했다.
최 회장은 그룹 차원의 포트폴리오 조정 등과 관련해 "'새로운 트랜지션(전환) 시대'를 맞아 미래 준비 등을 위한 선제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미국에서는 AI 말고는 할 얘기가 없다고 할 정도로 AI 관련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며 "그룹 보유 역량을 활용해 AI 서비스부터 인프라까지 'AI 밸류체인 리더십'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의 이 같은 비전에 따라 SK는 2026년까지 80조원의 재원을 확보하고 AI·반도체 등 미래 성장 분야 투자와 주주환원 등에 활용한다.
AI·반도체 투자를 통해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필두로 한 AI 반도체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로 꼽히는 AI 데이터센터 △개인형 AI 비서(PAA)를 포함한 AI 서비스 등 AI 밸류체인을 더욱 정교화하고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는 2028년까지 5년 간 총 103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HBM 등 AI 관련 사업 분야에 약 80%(82조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는 AI 데이터센터 사업에 5년간 3조4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그룹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에는 AI·반도체 밸류체인에 관련된 계열사 간 시너지 강화를 위해 7월1일 부로 '반도체위원회'를 신설하고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을 위원장으로 보임하기로 했다.
이처럼 AI와 반도체를 중심으로 그룹의 역량이 모이면서 그동안 전략적 투자를 확대해온 배터리 사업에는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이날 회의에서도 "그린·화학·바이오 사업 부문은 시장 변화와 기술 경쟁력 등을 면밀히 따져서 선택과 집중, 그리고 내실 경영을 통해 '질적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K의 배터리 계열사인 SK온은 경영전략회의 이후 첫 월요일인 1일 비상경영을 선언했다.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최고생산책임자(CPO),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C레벨 전원의 거취를 이사회에 위임했다. 최고관리책임자(CAO)와 최고사업책임자(CCO) 등 일부 C레벨직을 폐지하고 성과와 역할이 미흡한 임원은 연중이라도 보임을 수시로 변경한다.
이와 함께 올해 분기 흑자전환에 실패할 경우 내년도 임원 연봉을 동결하기로 했다. 임원들에게 주어진 각종 복리후생 제도와 업무추진비도 대폭 축소한다. 현재 시행 중인 해외 출장 이코노미석 탑승 의무화, 오전 7시 출근 등도 지속할 예정이다.
SK온은 운영 비용은 줄이는 가운데 핵심 경쟁력을 지속 확보하기 위해 연구∙개발 투자는 최대한 지원한다고 밝혔다. SK온은 2021년 설립 이후 2022년 5조원, 2023년 6조8000억원, 2024년 7조5000억원 등 총 20조원 가까이 투자를 진행했다.
SK온에 대한 설비 투자가 늘어나면서 모기업인 SK이노베이션의 부채 규모도 늘었다. SK이노베이션의 부채는 2019년 21조3212억원이었으나 올해 1분기에는 55조617억원으로 늘어났다.
올해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영향으로 생산설비 증설 시점을 탄력적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배터리 캐즘이 2026년부터 완화될 것으로 보고 있어 이때까지는 투자에 속도 조절을 하면서 수익성 개선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업계에서는 SK온이 하반기 미국 조지아 2공장에서 현대차향 물량을 출하하면서 점차 실적을 개선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