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각각 20억 달러의 해외채권 발행으로 총 40억 달러의 외자를 조달했다는 대대적인 언론 플레이가 한동안 외환시장의 불안감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을 줬다. 산업은행은 리보금리에 6.15% 포인트나 더 얹어주었고 수출입은행은 8.125%라는 고금리로 채권을 팔았으나 5년 만기 장기채권 발행에 성공했다는 점만 부각되며 시장관리가 일시적인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중 6억 달러는 한국은행이 금융권의 외환위기를 막기 위해 풀어줬던 국내 보유 외화였단다. 보험사, 자산운용사, 국민연금 등이 국내 달러 들고 나가 한국의 해외채권을 사줬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기관투자가들이 국내 은행들과 외화 스와프를 통해 한국은행이 저금리로 공급한 달러를 확보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해외채권을 사준 과정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다시 순서를 따라 정리해보자.
정부의 손가락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 한국은행이 먼저 금융권에 달러를 풀어주고 뒤따라 국책은행들이 고금리 해외채권을 발행했다. 그리고 한은 달러를 공급받은 국내 금융기관들은 스와프 거래를 체결한 기관투자가들에게 그 달러를 일부 공급했고 기관투자가들은 그 달러로 해외채권을 구입했다.
이것이 과연 우연히 나타난 예상치 못한 결과일까.
정책당국에 호의적인 시선을 보낸다면 단지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기관투자가들이 고금리 상품에 매력을 느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해외채권을 매입한 것이라고 너그럽게 봐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전체 과정과 순서를 보자면 그렇게 너그럽게만 봐주기엔 뭔가 석연치 못한 구석이 많다. 더욱이 해외채권 발행에 성공했다는 점을 정권 나팔수가 되어버린 공영방송을 통해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사실을 기억한다면 그 저변에 깔린 정치적 의도를 외면해버리기 힘들다.
현 정부의 등장 이후 보수적인 언론들의 자발적(?) 협조와 달리 공영방송 아닌 정부방송이 되어버린 공중파 TV의 프로그램들이나 전반적 행보가 너무도 뚜렷이 프로파간다의 색채를 띠고 있는 게 이즈음의 언론풍경이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1년 특집 프로그램은 오직 찬가 일색으로 21세기 용비어천가나 다름없어 구설을 탔다. 몇몇 정권 차원에서 뼈아픈 사회적 이슈들이 삽입된 것은 단지 정권의 일관된 추진력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양념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여론을 일방적으로 끌어가고자 하는 정권 차원의 정책목표가 뚜렷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모든 부처의 정책목표는 그 방향성이 분명할 터이다. ‘정치’를 들먹이며 ‘보스의 심기를 미리 알아차리고 알아서 앞장서는’ 보신문화를 일구지 못한 집권 여당이 먼저 당하는 것을 본 행정부다. 정치 쇼가 서투른 충성파도 걸러질 수밖에 없음을 개각을 통해 체험한 행정 관료들이다. 그들로서는 현 상황을 근본적으로 타개하려는 노력보다는 정권홍보의 효과에 우선순위를 둔 정치 쇼를 연출하는 데 더 중점이 두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금융권은 그런 정부의 방향잡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프로파간다를 통해 정치적 위기를 돌파해 나가려는 정부 아래서 민영화된 금융사라고 자유로운 영업을 해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면 그건 너무 순진한 믿음이다.
우리는 흔히 프로파간다를 공산주의 선전수단이나 히틀러의 신사회주의 정책수단으로만 배워왔다. 그러나 이즈음의 정치 쇼들을 보노라면 국민들이 문제의 핵심을 보지 않고 밥그릇에만 코 박고 살다보면 어느 사회, 어느 체제에서나 권력을 가진 자, 가진 권력을 지키려는 자들에겐 여전히 큰 유혹이 될 수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아마도 현 정권의 브레인 중에는 60, 70년대 고도성장의 비결 중 하나가 박정희 정권의 뛰어난 프로파간다임을 간파한 이들이 포진해 있는 모양이다. 이미 경제정책이며 모든 것들이 ‘어게인 70년대’를 목표로 삼고 있음을 계속 보여주고 있는 마당이니 그만한 매력적인 정책 수단을 외면할 리는 없을 터이다. 그러나 굳이 양치기 소년과 같은 우화를 들먹이지 않아도 프로파간다의 생명은 그리 길지 못하다는 점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