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시험, 은근슬쩍 '가(假)답안' 변경…'말썽'
공인중개사시험, 은근슬쩍 '가(假)답안' 변경…'말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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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착오" vs "못 믿겠다"

[서울파이낸스 신경희기자]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제 22회 공인중개사시험에 대한 '가(假)답안' 변경 방침이 발표되자 응시생들이 '항의집회'를 벌이는 등 거센 반발이 일고 있다.
 
그간 시험문제 오류로 인한 재시험 요구, 행정심판 청구 등 각종 논란과 갈등이 있었지만, 공단이 '가답안' 자체를 정정한 경우는 22년 공인중개사시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논란의 원인, 가답안 임의정정
 
공단 "이기 과정에서의 실수"수험생들 '분노'
 
지난 28일 오전 서울 공덕동 산업인력공단 앞에서 100여명의 응시생들이 공단의 시험문제 출제와 관리부실 등을 항의하는 집회를 가졌다
 
이는 시행기관인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지난 23일 시행된 제22회 공인중개사 시험이 끝난 후 가답안을 게시한 다음에, 하루만에 갑자기 가답안(2차 시험의 '공인중개사의 업무 및 부동산 거래신고에 관한 법령 및 중개실무' A5(B9) 문항의 가답안을 번에서 번으로 변경)을 변경한다는 공지사항을 올리면서 비롯됐다.
 
이날(지난 24일) 산업인력공단은 시험 홈페이지에서 가답안 정정소식과 함께 "답안기재 착오로 인해 가답안이 변경된 것에 대하여 수험자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미에 덧붙였다.
 
하지만 시험 난이도 상승으로 짧게는 1, 길게는 2~3년간 교재비와 학원비, 식비에 기회비용까지 지불하며 열심히 준비해온 수험생들은 이같은 공단측 발표에 분개했다.
 
지난 25일 다음(Daum) 아고라 게시판에 "공인중개사 수험생은 너무 힘듭니다"는 제목의 글로, 청원운동이 시작된 것이 일파만파로 번졌다. 이어 공인중개사시험 온라인 까페를 비롯해 국토해양부·행정안전부 등 관련부처 게시판에 비난하는 글이 쇄도했다.
 
그렇지만 정작 한국산업인력공단 홈페이지에 접수된 이의제기 등 민원건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홈페이지 내에서 당해 시험에 응시한 수험생만 로그인해서 접속할 수 있고 1·2차 시험을 구분해 등록할 수 있는데다, 로그인한 본인에 한해서 열람가능한 시스템으로 사실상 비공개로 운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공단 외의 온라인 게시판과 오프라인상 전화로 비난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고,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공단 측은 지난 27일 가답안 수정을 하게 된 사유를 해명했다.
 
산업인력공단은 홈페이지를 통해 "출제위원의 가답안 이기 과정에서 발생한 착오를 23일 가답안 공개직후 출제위원들이 이를 발견하고 수정요구가 있어, 출제위원 전원의 동의 후 정확한 가답안 공지를 위해 수정한 것임을 알려드린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답안 수정 문제를 포함해 1030일까지 접수된 모든 의견제시 내용을 정답심사위원회에서 공정하게 심사하여, 1123일 최종정답을 확정·발표할 예정이다"고 덧붙였다.
 
논란의 핵심, 가답안은 바꿔도 괜찮아(?) 응시생들 '비난 봇물'
 
하지만 애초의 가답안을 보고 커트라인으로 합격한 줄 알았던 사람을 비롯해 변경된 가답안에 의해 한문제 차이로 떨어지는 수험생들은 분노와 허탈감을 금치 못했다.
 
응시생 K모씨는 "국가가 인정해주는 자격시험에서 이미 발표된 가답안이 변경되는 상황을 납득할 수 없다", "원래 가답안이 한 번 나오고, 몇 주간의 기간이 지난 뒤 최종정답이 확정돼 공지되는 게 원칙인데, 이번 시험은 가답안 공개하고 이달 31일까지 이의신청받은 후에 최종정답을 확정해 공지하기로 해놓고 시험이 끝난 다음날 바로 출제위원들 회의를 거쳐 가답안을 바꿔서 수험생을 우롱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공표한 가답안을 출제위원들 회의를 거쳐 정정할 권한과 법적근거가 없는데도, 출제위원들을 비롯한 공단 관계자들 업무상 과오를 감추기 위해서 가답안을 임의로 바꿨다"고 덧붙였다.
 
J모씨도 "역대 21회까지 치러진 시험에서는 가답안을 정정한 적도 없고 문제오류가 있으면 최종답안 발표를 하면서 기존의 가답안을 포함해 중복답안이나 전부 정답처리를 했는데, 이번 시험만 오답 처리하면 형평성에 어긋난다", "이미 공표된 가답안을 임의적으로 정정할것이 아니라, 정답심사협의회에서 의결을 통해 최종정답을 결정할 수 있게끔 변경전 가답안과 변경후 가답안을 병기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공단 관계자는 "이번 일은 단순히 이기 과정에서 착오가 생겨 일어난 일인지라, 현재로써는 병기표시나 복수정답 등을 고려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달 말까지 의견수렴해서 다음달 23일에 최종정답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른 자격시험 관계자는 '가답안'이라는 말 자체가 답안을 확정짓기 전에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어 법적으로는 문제될 것이 없으나, 도의적 비난은 피해가기 어려울 것 같다"며, "정답을 잘 못 옮겨 쳤다는 출제위원에 대한 징계도 현실적으로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자격시험도 아니고, 명실공히 국가공인자격시험을 대표하는 공단에서 출제와 관리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이같은 논란의 여지가 없었을텐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의아하다"고 덧붙였다.
 
출제오류 은폐새로운 의혹 제기돼
정답률 분포 관행상, 출제 당시부터 4번이었다
 
그러나, 한 응시생은 "여태까지 타과목을 통틀어봐도 특정 번호의 정답이 10개인 경우는 없었다", "가답안 이기 과정에서 발생한 착오가 아니라 출제 당시부터 번을 답으로 인정한 원시적 인 문제로, 출제오류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문제된 제2차시험 과목인 '공인중개사의 업무 및 부동산 거래신고에 관한 법령 및 중개실무'(이하 공인중개사법)의 최근 5년간 실시된 제17~21회 시험과 올해 22회의 문항별 정답률을 조사한 결과, 2006(17) 20%(8) 18%(7) 23%(9) 20%(8) 20%(8) 였다.
 
이어 2007(18)시험의 문항별 정답률은 20%(8) 20%(8) 20%(8) 20%(8) 20%(8), 2008(19) 시험은 18%(7) 20%(8) 23%(9) 23%(9) 18%(7), 2009(20) 18%(7) 23%(9) 20%(8) 23%(9) 18%(7), 2010(21) 20%(8) 18%(7) 20%(8) 23%(9) 20%(8)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 22회 시험의 경우 가답안 정정 전에는 23%(9) 18%(7) 23%(9) 18%(7) 18%(7) 였던 것이 공단측의 가답안 정정으로 23%(9개) 18%(7개) 25%(10개)  20%(8개) 18%(7개)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한 번호로 밀어 찍었어도 4분의1이나 쉽게 맞게 돼, 문항별 정답률을 고르게 분포해 출제하는 관행이 흐트러지는 결과를 낳았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출제 당시부터 번을 답으로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
 
이에 대해 공단 관계자는 "원래 정답이 인데, 출제위원이 가답안을 전산에 옮기는 과정에서 착오를 일으키며 로 오타를 쳤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실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 응시생들 "공단 신뢰할 수 없다" 대책마련 촉구
 
일각에서는 사상 유례없는 가답안 임의변경으로 공단을 못 믿겠다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P씨는 "공단 측 주장대로 가답안이니까 변경하는 게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면, 지금 현재 나와있는 가답안도 얼마든지 변경될 수 있고, 바뀌어도 괜찮다는 것이냐", "시험을 주관한 공단측이 책임있는 자세로 한 문제로 합격당락이 정해지는 수험생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된다"고 성토했다.
 
B씨도 "공단의 행정편의적이고 무성의한 대처에 마음고생이 심하다"“1년에 한번뿐인 국가공인시험이 단순히 행정착오라는 이유로 이 사건이 덮어진다면 시험의 권위가 무너지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이번일을 그냥 넘어가면 또다시 가답안 정정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이와관련,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공인중개사 자격시험 시행, 출제 등 모든 업무를 한국산업인력공단에 위탁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재로써는 공단의 공지대로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정답심의위원회 결정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1985년 처음 시행된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은 올해로 22회째 이어져오고 있다. 건설교통부(국토해양부)는 2004년 12월말 공인중개사시험을 위탁하는 기관을 정부투자기관·정부출자기관·협회 등으로 다양하게 하는 내용을 담은 '부동산중개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2005년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토지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로 시험위탁기관을 바꿨다.
 
이같은 일은 2004년 제15회 시험이 '사법시험 수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려웠던 게 발단이 됐다. 난이도 조절실패로 산업인력공단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국토부는 시행령을 바꿔 시험 위탁을 부동산 관련기관인 토지공사에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가자격시험 통합관리계획에 따라 2008년 제19회 시험부터 다시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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