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대접과 조직의 명운
사람대접과 조직의 명운
  • 홍승희
  • 승인 2005.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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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재방영된 한 TV다큐멘터리에서는 조직의 명운과 관련해 매우 의미있는 지적을 했다.

이는 중국의 산업스파이 활동이 극성을 떨치고 있는 정보통신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특히 귀담아 들을만한 내용인 듯 싶다.

13세기부터 시작돼 18세기까지 아시아의 기술 문명이 유럽을 압도했던 상징물인 도자기산업과 관련해 한 일간 운명을 가른 결정적 계기로 이 프로그램은 임진왜란을 꼽았다.

즉, 임진왜란을 통해 침략자 일본은 당시 조선땅에서 도공을 비롯한 장인들을 집중적으로 끌고 감으로써 낙후됐던 일본의 산업을 급속도로 신장시켰다는 것이다.

특히, 조선 도공의 거의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1천여명을 끌고 간 일본은 당시 중국이 명 청 교체기의 혼란 속에 생산을 중단한 도자기 기술을 집중 육성함으로써 단기간에 유럽 시장에 두각을 나타낸 반면 조선은 전후 왕실 제례용 도자기조차 구하기 어려울 정도의 치명타를 입었다.

유럽이 아시아가 절대적 기술 우위를 갖고 있던 도자기에 열광하던 시기에 중국과 일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시장을 공략할 동안 조선은 존재조차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자기 생산기반이 전혀 없던 일본은 조선 도공들을 대거 끌고가 도자기 생산을 시작한지 불과 50년만에 유럽 시장의 수요를 선도해 나갈 만큼의 기술적 성취를 이뤘다.

그 이면에는 임진란의 주력이었던 큐슈 지방의 봉건 영주들간 경쟁이 도자기 생산에 집중된 까닭도 있었지만 조선 땅에서 천민으로 취급되던 도공들을 끌고 간 일본이 그들을 장인으로서 제대로 대접하며 기술 개발 의지를 북돋워 줬기 때문에 단기간에 일본만의 독자적 기술을 개발할 수 있게 했다.

그에 반해 조선은 왕실의 보전에만 급급한 나머지 백성들을 내팽개친채 국왕이 자기 영토의 구석까지 몰려가고 끝내는 국경을 넘느니 마느니로 설왕설래하는 꼴이었으니 평소 천대하던 각 분야 장인들의 기술 보전문제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을 것은 자명하다.

그렇게 기술과 그 기술을 보유한 사람을 소홀히 여긴 결과가 이후 조선과 일본 사이 기술의 역전을 초래한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만 해도 국내의 특허기술을 몰래 빼돌려 외국 기업에 팔아넘기려다 적발된 IT기술자들에 대해 이공계 사람들은 그 죄를 변호할 수는 없지만 그 심정은 이해한다는 말을 종종 한다.

그들은 IMF 구조조정 과정에서 제일 먼저 감원대상이 된 것도 연구직이었고 기껏 가정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밤샘을 밥먹듯하며 기술을 개발해봐야 회사와 사주만 배가 부를 뿐 연구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여전히 불안한 일자리 뿐이라고 자조한다.

16세기 동아시아의 도자기 기술에서 명 청, 조선, 왜의 순으로 우열이 나뉘었다면 지금의 동아시아 IT기술은 일본, 한국, 중국으로 역순이 됐지만 당시의 왜처럼 지금 중국이 우리의 기술을 가로채기 위해 숨가쁘게 쫒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기술인력을 소중히 하지 못하고 그들로 하여금 순간순간 유혹에 시달리게 방치하고 있다.

기술유출을 막겠다고 기술인력들이 자리 한번 옮기려면 몇 년씩 동종 업종 취업을 금지시키지만 이는 인력을 기술의 하위에 두는 비인간적 발상이며 기술인들로 하여금 스스로가 노예화됐다는 참담함을 느끼게 할 뿐이다.

이런 전반적 분위기가 이공계 기피를 부르는 근본적 원인이고 우리의 기반기술 결핍으로 기술강국이 단지 사상누각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 하는 이유다.

한국사회는 이미 중심권력이 정치에서 자본으로 넘어간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 사회의 권력 구조 속에서 기술은 철저히 자본권력에 종속되고 기술인들은 여전히 권력구조 바깥의 소외된 집단에 머물러 있다.

기술보다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조직의 미래가 과연 남아날 수 있을까.

과거에는 무력이 장인들을 끌고 갔다면 지금은 자본이 기술인들을 끌어가는 시대인데 지금 이 구조 그대로 몇 년 더 가면 한국이 우위를 가지는 기술이 과연 남아날 수는 있을까.

도자기로 부를 축적한 큐슈의 영주들이 훗날 명치유신의 주역이 되고 조선 침략의 선봉이 됐던 뼈아픈 역사가 또다시 반복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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