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시장지배적사업자=소비자선택사업자?
[기자수첩] 시장지배적사업자=소비자선택사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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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임현수기자] 지난 25일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자매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에서 관심을 끄는 토론회를 열었다. 주제는 '바른 용어(正名)를 통한 사회통합의 모색'으로 시장경제 용어들에 드리운 '낙인'을 지우기 위해 올바른 용어로 바뀌어야한다는 주장이다.

일면 설득력 있는 내용들도 있다. '보수와 진보'라는 용어를 '우파와 좌파'로 바꿔 사용하자는 것이 좋은 예다. '진보'라는 것 자체가 더 나은 것으로 나아간다는 긍정적 의미인데 반해 '보수'가 안주하고 정체된 부정적 의미인 것만 보더라도 가치중립적인 용어는 아닌 까닭이다.

'자본주의'를 '시장경제'로 표현하자는 것 역시 이해할 만하다. 자본주의가 돈이 최고의 가치라는 어감을 주는 반면 '시장경제'에는 부정적 선입견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상당 부분은 시장경제를 지나치게 감싸고 도는 것으로 읽힌다.

특히 자본주의 앞에 자주 등장하는 수식어들을 다르게 표현하자는 부분이 그렇다. 약육강식/정글/승자독식/약탈 자본주의를 조화/상생/소비자선택 자본주의로 바꾸자는 것이 그것.

이런 격한 수사들은 대기업들이 우월적 입장을 이용해 부당 단가 인하, 기술 탈취, 불공정계약 작성, 과다 수수료 수취 등의 행태를 보였을 때 언급되곤 하는데 이런 행위들마저 조화, 상생, 소비자선택으로 표현될 수는 없다.

시장경제만을 옹호하고 정부의 개입은 배격하는 모습도 보인다. △천민/정실/부패 자본주의 →부패 정치/권력 △시장실패→정부/정치/정책실패 △규제완화→탈규제 △복지투자→복지소비/지출 △보호무역주의→무역규제주의 등이 그 예들이다.

무엇보다 시장점유율을 소비자선택율로,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소비자선택 사업자로 부르자는 것 또한 시장의 잘못 자체를 인정하지 않거나 그 책임을 소비자에게 떠넘긴 것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말처럼 용어는 개인의 인식과 틀을 규정하는 힘을 갖고 있다. 용어가 가치중립을 지켜야하는 이유다. 하지만 시장경제에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를 벗기기 위해 정부로 책임을 떠넘기거나 소비자들의 선택이라고 호도해서는 안된다. 더욱이 시장의 실패, 횡포 등에 눈감는 모습은 옳지도, 현명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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