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진표 경제팀에 보내는 제언
(시론)김진표 경제팀에 보내는 제언
  • 홍승희
  • 승인 2003.05.1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진표 경제팀의 행보가 위태롭다. 개혁을 화두로 출발한 참여정부 첫 경제팀의 개혁의 정체가 갈수록 모호하기만 하다. 대상도, 기준도 보이지 않는다.
취임하자마자 카드채 소동,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 등 국내 시장을 강타한 악재에 휘둘렸고 대외적으로는 북핵문제로 야기된 해외투자 여건의 악화라는 역풍을 맞아 정신차리기 어려웠다는 점을 감안해도 도무지 기준이 보이지 않는 행보는 문제가 있다.
최근 금리인하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과정만 해도 개혁적 경제팀의 모습은 아니다. 매사를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결정할 수는 없다 해도 적어도 금리인하의 당위성이 각 경제주체들에게 납득될 과정은 필요했다. 공론을 일으키고 분위기가 조성될 때 집행해야 정책 집행의 뒷말이 줄어든다는 지혜는 이미 조선왕조시대에도 터득, 실천했던 것이다.
그러나 중앙은행과 금통위가 당장의 필요를 인정하지 않던 금리인하를 경제부총리가 밀어부쳐 추진하려다 일단 주춤하면서 모두가 스타일을 구겼다. 중앙은행에는 큰 상처를 안겼다.
인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더더욱 이해하기 힘든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물론 김진표 부총리가 직접 나서서 뭐라 한 바는 없지만 끊임없이 금융권 인사 개입설이 나도는 데 부총리의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개혁을 해나가는데 일정 정도 인사 혁신은 필요하다. 그러나 개혁에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구조개혁, 프로세스 개선, 인사 혁신 모두 기준이 필요하다.
관치금융에 물들었던 구악 인사가 있어서, 혹은 경영성과가 유난히 부진한 무능한 인사가 있어서 바꿔치는 것이라면 누구도 그런 인사에 제동을 걸 수 없다. 개혁의 발목을 잡는, 그래서 현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는 기관장이 있다면 바꾸자 해도 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지금 금융권에서 계속 미운털이 박혔네, 물갈이 대상 0순위네 하는 인물들이 그 어떤 경우에 해당된다는 증거가 없다. 정부와 의견을 달리 한다고 해서 꼭 개혁의 발목을 잡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소신있는 경영자라면 기업 입장에서 정부의 정책에 딴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개혁에는 그런 소신이 필요하다.
참여정부는 구조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경제팀이 지금껏 보여주고 있는 것은 단지 인사권의 우회적 행사 이상이 없다. 그게 문제다.
현 정부 최대의 과제는 남북간 평화정착과 경제 체질 개선을 통한 동북아 중심국가로의 부상이다. 경제팀의 짐도 그만큼 무겁다. 그러나 경제팀에게서는 그런 국가적 비전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고 연신 날라오는 잽에 정신 못차리는 불운한 복서의 모습만 보인다.
카드사의 숫자가 시장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아서 과당경쟁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엄청난 부실이 발행했음에도 김진표 경제팀은 카드산업 구조조정을 전제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카드사 살리기에 나서는 모습만 보였다. 기업과 기업주를 구분하지 못하는 행태도 과거 여느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칼자루는 쥐었으나 대상이 보이지 않아 허공에 대고 휘두르는 꼴이다.
김진표 경제팀은 개혁의 대상부터 명확히 하고, 서둘러 기준을 세워 예측 가능한 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게 현 정부의 성격과도 부합한다.
더 이상 관치 인사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인사 문제는 이제 그야말로 시장기능에 맡겨야 한다. 다만 정부는 시장 참가자들의 공정한 게임을 위해 마당을 펼치고 게임의 룰을 확실히 제시하고 지켜가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