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驛을 출발한 '론스타 특급'이 반환점도 거치지 않고 결국 '허탈'의 종착역을 향해 곧장 질주하고 마는 건가?
외환은행 매각 본계약 기간 연장을 둘러싼 국민은행과 론스타간 협상이 계약기간 만기일을 넘긴지 두달이 다 돼가는 데도 도무지 진전이 없다. 검찰수사가 난항을 겪으면서 계약무산 가능성마저 거론되는등 상황은 되레 악화되고 있다. 서로가 손해보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양측의 합의를 지연시키고 있는 이유일진대, 이는 역으로 말하면 상황에 따라 어느 한 쪽으로 타격(손실)이 치우칠 개연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극단적인 대치는 그에 상응하는 피해를 남기는 것은 상식이기에. 비단 상거래뿐이겠는가. 核을 사이에 놓고 한반도의 北과 미국이 벌이는 정치외교적인 '극단적 게임'을 우리가 걱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까닭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어떤 평범한 시골장터의 모습을 한번 떠올려 보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A라는 물건을 놓고 사는 쪽인 甲과 파는 쪽인 乙이 흥정을 모두 끝내고 계약서까지 썼다. 워낙 큰 건이어서 다른 마을은 물론, 이웃나라에 까지 소문이 퍼졌을 정도의 거래다. 그런데 갑자기 예기치 않은 돌출변수가 생겼다.
A라는 물건이 시장에 나오기 이전에 부당한 거래가 있었다는, 일종의 '藏物'시비가 불거진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갑도 을도 아닌 제3자가 장물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끼어 들게 됐고, A를 둘러싼 거래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그런데, 웬지 乙은 '만만디'다. 장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계약후 제때에 양수양도가 이뤄지지 않는 사이 물건 값이 뛰었으니, 이제는 팔더라도 돈을 더 받아야겠다고 甲을 윽박지르고 있다. 甲은 乙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얼토당토 않다며 한 푼도 더 얹어 줄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장물인지 의심스런 물건을 들고 시장에 나온 당신들 때문에 물건을 제때 건네 받지 못하게 됐으니 우리도 같은 피해자라고 맞받아 친다.
과연, 이 골치아픈 거래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제3자가 A라는 물건이 장물임을 입증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최소한 甲과 乙 어느 한 쪽도 거래를 깰 생각은 없어 보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설사 장물임이 입증된다손 치더라도 물건의 현재 주인인 乙이 장물취득 과정에서 범법적 행위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명백한 증거를 들이대지 못하는 한 상황은 더 복잡해질 가능성만 높아 진다.
제3자의 '장물가리기' 수사는 벌써 7개월여를 끌고 있다.
그런데, 최근들어 수사결과를 놓고 이러쿵 저러쿵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A가 장물이라는 증거는 물론, 乙이 장물거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근거를 확실하게 밝혀 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더구나, 시비를 가려야할 제3자가 두 편으로 갈려 '자중지란'까지 벌이고 있으니...乙은 강 건너에서 이를 즐기고 있고.
그렇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시비가리기에 나섰던 제3자입장에선 장물임을 입증하지는 못했지만, 체면때문에서라도 "여전히 장물인지 의심이 간다"면서 몇몇 거간꾼들, 그것도 구전 몇 푼 챙긴 피라미급만이 다치는 수준에서 얼버무릴 가능성이 높다. 돌아가는 상황이 그렇다.
그 다음은 또 어찌 될 것인가.
乙의 공세가 더 거세질 공산이 크다. "거 봐라. 장물이 아니라고 했는데 왜 믿지 않고 거래를 뒤틀리게 만들었느냐. 이제는 마음고생까지 보상하라"는 식으로 나올 수도 있다. 해(年)를 넘겼으니, 그에 상응한 보상(배당)까지 하라고 요구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요즘 흔한 말로 '배째라'는 식으로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웃 마을은 물론 이웃 나라에까지 소문이 나 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乙이 누군가. 범상한 토박이 장사치가 아니다. 이 마을 저 고을을 돌면서 닳고 닳아 '장사의 룰'에 관한한 한 눈에 꿰고 있는 그야말로 '프로'가 아닌가.
다행히 乙의 요구를 무마하고 거래를 예정대로 성사시킨다고 치자. 물질적인 추가 비용을 모면했다고 능사는 아니다. 이웃들에게 퍼진 '좋지 않은 소문'이 앞으로 甲은 물론, 갑이 속한 마을의 상거래에 줄 타격은 어찌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이쯤되면 거래지연으로 훼손된 물건을 넘겨받아야하는 아픔은 아픔도 아닐테고. 결국, 이 거래에서 누가 이익이고 누가 손해인지는 불문가지다.
론스타의 '만만디'를 바라보는 구경꾼들의 심사가 편치 않은 것은 위의 거래와 같은 꼴이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때문에서이다.
더군다나 구경꾼들이 누군가. 甲은 우리가 앞으로도 거래해야할 우리마을을 대표하는 사업가가 아닌가. A는 또 어떤가. 동네사람들이 애지중지 키워 온 사실상 동네의 공동 소유물이 아닌가.
'장물'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이상 이를 밝히지 않고 거래하기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거간꾼 몇명을 옥에 가두는 정도의 결과를 기대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자칫 구경꾼들의 심정은 조사가 시작될 때의 '분노'보다 도 못한 '허탈' 로 끝나지나 않을까.
이미 손해는 甲만의 몫도, 또 혼자 감당할 성격도 아닌 것이다. 온 동네를 덮친 엄청난 피해를 누구에게서 보상받는 단 말인가.
의기양양하게 멧돼지 사냥을 나섰다가 멧돼지를 잡기는 커녕, 산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건 아닌지. 구경꾼의 한 사람으로서 걱정이 태산이다.
이양우 sun@seoulf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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