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현실 외면한 해운업 지원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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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황준익기자] "좀 과장해서 국내 해운사의 30~40% 정도는 부채비율이 400%가 넘을 것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해운사를 지원한다는 정책은 반갑지만 그 혜택을 받지 못하면 소용없는 것 아니냐"

지난 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2016년 해양수산가족 신년인사회'에서 한 중소해운업체 대표는 정부의 해운업 지원대책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그동안 해운업계는 정부 금융지원을 적극적으로 요구해 왔다. 선도산업인 해운산업에 대한 지원이 우선돼야 조선산업도 침체를 극복하고 동반 성장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정부는 지난달 30일 민·관 합동 선박 펀드를 조성해 해운업의 구조조정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특히 기업 스스로의 자구노력을 통해 재무상태가 일정 조건(부채비율 400% 이하)을 달성할 때만 지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 해운사들이 자체적인 경영정상화 노력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해운업계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부채비율 400% 이하' 조건을 충족할 해운사는 많지 않다.  한국선주협회에 따르면 150개 국내 해운사의 부채비율은 2008년 197%, 2010년 247%, 2011년 330%, 2014년 378%로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우리나라 양대 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부채비율만 봐도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각각 747%, 786%에 이른다. 한 때 1000%가 넘었던 부채비율을 그나마 낮춘 것이 이 정도다.

장기불황에 빠져 갈수록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금융지원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건 현실을 외면한 미봉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지난 8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16 KMI 해양수산전망대회-해운·해사 토론회'에서도 정부의 선박금융 지원에 대한 비판은 이어졌다.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상근부회장은 "조건 부채비율인 400%는 선사들의 상황을 감안해 합리적인 재조정이 필요하다"며 "부채비율이 400%면 위기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또 토론회에 참석한 한종길 성결대 동아시아물류학부 교수는 "그동안 우리는 위기가 터지고 대책만 얘기해 왔다"며 "정부·업계·학계·연구기관이 참여해서 20년 뒤를 내다보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결국 해운업계의 현실을 외면한 이번 금융지원 대책은 업계에 더욱 큰 실망감을 안겨준 셈이 됐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해운업계의 비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물론 해운업계의 자발적인 구조조정은 필수 전제조건이다.

아울러 한 교수의 지적처럼 정부의 해운업 대책이 눈 앞의 경기침체에만 초점이 맞춰질 게 아니라 중장기적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선구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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