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희정기자] 연말을 맞아 급전이 절실한 서민들에게 대환대출을 해주겠다고 속인 뒤 돈을 가로채는 대출빙자형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 방송통신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주의를 당부하고 나섰다.
지금까지는 대출진행을 위해 보증료나 수수료가 필요하다며 돈을 요구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지만, 이제는 정부지원 상품인 햇살론 같은 저금리 대출상품으로 대환해주겠다며 거액을 받아챙기는 수법으로 진화했다.
11일 방통위와 금감원에 따르면 최근 30대 남성 오모씨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와 무심코 받았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국민행복기금, 정부지원 자금으로 고금리부채를 마이너스통장 개설로 통합 가능하다. 대환대출 상담이 필요하면 1번 버튼을 눌러라"라는 자동응답기(ARS)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연말이 다가와 송년회나 가족모임으로 여윳돈이 급했던 오씨는 1번을 눌렀다. 통화 연결음이 한두 번 가다 햇살론 안내센터 직원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이 사람은 오씨가 햇살론(6%) 대출이 가능한데 현재 신용등급이 낮으니, 기존 저축은행 대출금 일부인 1800만원을 상환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불러주는 '김모씨' 계좌로 돈을 입금하면 햇살론으로 대환처리 하고 휴대폰으로 안내 문자메시지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오씨는 여기저기 돈을 빌려 1800만원을 송금했고, 안내센터 직원이라는 사람은 그 돈을 인출한 후 유유히 잠적했다. 돈을 보냈는데도 아무런 연락이 없자 오씨는 보이스피싱 사기범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비슷한 수법으로 피해를 본 사람은 오씨뿐만이 아니였다. 앞서 사기범이 불러준 계좌 주인인 김씨도 보이스피싱 피해자 중 한명으로 밝혀졌다.
사기범은 김씨에게 신용도가 낮으니 거래실적을 쌓아야 한다고 조언하면서 자신이 돈을 보내줄테니 김씨 소유의 다른 계좌로 이체하고, 나중에 직접 만나 돈을 돌려달라고 했다. 은행의 의심거래 모니터링을 교묘히 빠져나가기 위해 김씨를 이용한 것이다. 이 때 사기범이 보내준 돈은 모두 오씨가 입금한 돈으로 드러났다.
금감원에 따르면 대출금 상환은 본인명의 가상계좌 또는 금융회사 명의로만 가능하다. 타인 계좌로 송금하도록 유인하면 무조건 보이스피싱으로 봐야한다. 신용등급을 올려 준다며 전산작업비, 공탁금, 보증료 등을 입금하라는 요구도 마찬가지다. 금융회사는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를 걸어 햇살론 같은 대환대출을 권유하지 않는데다, 정부지원자금은 금융회사 영업점 창구를 직접 방문해 상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이런 신종 사기 수법이 널리 퍼지면서 피해금액은 점점 늘고 있다. 금감원은 대출빙자형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지난해 말 87억원에서 올해(1월~11월) 107억원으로 22.9%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기간 1인당 평균 피해금액도 530만원에서 710만원으로 34% 급증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기존 대출금을 상환할 때는 해당 금융회사 명의의 공식 계좌를 이용해야 한다"며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하면 신속하게 경찰서나 해당 금융기관에 지급정지를 신청해야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방통위와 금감원은 서민들의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보이스피싱 피해예방 문자메시지'를 통신사 명의로 발송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