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유류세 축소분 다 반영된 가격인가요?"
"아직은 아닙니다. 주변 주유소 가격도 봐야하고 단골들 눈도 있고. 당분간 적정선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유류세 인하폭이 15%에서 7%로 축소된 첫날. 7일 오전 12시 기준 서울 강남구에서 가장 저렴한 현대오일뱅크 직영주유소에서는 휘발유 L당 1512원, 경유는 1373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유류세 인하폭이 줄어들기 전인 지난 6일 기준 휘발유 가격은 1473원, 경유는 1345원으로 하루 사이 휘발유와 경유는 각각 39원, 경유는 28원 올랐다.
원래부터 가격이 싼 곳으로 입소문을 타서 그런지 이날 차량 방문 빈도는 6개월 전 유류세 인하율 15% 시행 첫날과 비슷했다. 지하철 3호선 매봉역 인근에는 교차로를 사이에 두고 반경 1Km가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주유소 4개가 몰려있다. 가격 책정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돼 있는 셈이다.
해당 주유소에서 기자가 인터뷰한 소비자 5명 가운데 1명만 유류세 7% 축소 시행 여부를 인지하고 있었다. SUV 차량을 소유한 A씨는 "원래 어제 주유하려고 했는데 일이 생겨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면서 "1원이라도 싼 가격에 구매하기 위해 오늘 일부러 차를 끌고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대다수는 지난해 유류세 인하 정책이 시작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인하폭이 축소된 것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아직까지는 체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주유소 직원은 "오늘은 상대적으로 한산한 편"이라면서 "어제는 평소 대비 매출이 2배나 올랐을 정도로 차량이 많았다. 손님들 가운데 대부분은 내일부터 유류세 인하폭이 줄어든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일부러 왔다는 반응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정부 방침에 따라 이날 기준 유류세 인하분의 15% 가운데 7%가 환원돼 휘발유는 L당 65원, 경유는 46원, 액화석유가스(LPG)부탄은 16원씩 가격이 오르게 된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6일부터 6개월 간 유류세 인하 조치를 시행해왔다. 당초 지난 6일까지 유류세 인하율 15%를 적용한 후 되돌리기로 했지만 민간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하폭을 단계적으로 낮춘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인하폭 적용은 8월 말까지 이어지고 9월 1일부터는 원래 세율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예정돼있다.
강남구 내 다른 주유소 몇 곳을 더 방문해봤다. 현대오일뱅크 직영주유소에서 직선 거리로 약 300m에 위치한 GS칼텍스 자영주유소에서는 이날 휘발유는 L당 1546원, 경유는 1426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지난 6일과 비교했을 때 휘발유는 50원, 경유는 20원 가량 올랐다. 해당 주유소 직원은 "어제와 비교했을 때 오늘이 한산한 건 맞다"면서 "단골 중에서는 주유를 하면서 유류세 인하폭이 내일부터 축소되는 것이 맞느냐는 질문을 특히 많이 하더라"고 말했다.
이곳에서도 세율 축소 여부를 인지하고 있는 소비자가 드물었지만 강남구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소비자들이 많았다. 관악구에 거주하는 정진우씨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10원 차이도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평소 오피넷을 검색해보고 저렴한 주유소를 찾아다니는 편"이라면서 "해당 주유소를 이용하는 이유는 강남구 내에서 상대적으로 싸기도 하고, 직장이 근처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남구에 거주 중이라는 B씨는 "유류세 인하율 축소가 오늘부터 시행되는 건 알고 있다"면서 "이쪽은 특히 가격 차이가 심해 가격이 싼 주유소 몇 곳을 지정해두고 주유를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매봉역 인근 나머지 2곳 가운데 또 다른 현대오일뱅크 직영주유소의 가격대도 인근 주유소와 비슷한 수준으로 형성됐다. 휘발유는 L당 1527원, 경유는 1386원으로 전날 대비 휘발유는 39원, 경유는 28원 올랐다. 반면 유독 비싼 곳은 SK 자영주유소였다. 이날 휘발유 가격은 1973원, 경유는 1797원을 기록했지만 매봉역 인근 주유소들 가운데 전날 대비 가격 변동이 없는 유일한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강남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은마아파트 근처 GS칼텍스 직영주유소다. 이곳은 역삼역과 매봉역 인근에 비해 주유소가 드문드문 위치해있고, 매봉역과는 약 4km 정도 거리다. 이곳에서 휘발유는 L당 1547원, 경유는 1442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지난 6일에 비해 휘발유는 20원, 경유는 15원 올랐다.
해당 주유소 점장은 "우리 주유소는 물론, 어제 인근 주유소들 매출이 2~3배 반짝 올랐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면서 "다른 곳에 비해 가격 인상폭이 적은 이유는 소비자들의 심리적 마지노선과 인근 주유소의 가격 변화 등 우선은 시장 반응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주유소를 찾은 소비자들은 다른 곳에 비해 세율 축소 여부를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5명 가운데 4명은 지난해부터 유류세가 15% 인하됐다는 사실과 이날부터 인하세율 폭이 축소된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6일부터 관련 기사가 쏟아졌는데 모를 수가 없다" 혹은 "주위에서 일부러 주유소에 간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 등의 반응을 보였다.
주유소 종합정보 모바일 앱 '오일나우'가 유류세 환원 시작 첫날 전국 1만1462곳의 주유소 가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날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지난 6일에 비해 L당 평균 5.26원 인상한 1482원을 기록했다. 서울의 경우 휘발유 기준 전날보다 11.37원 인상된 1576.47원에 판매되고 있으며, 1700원대에 판매하는 주유소도 76곳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유의 전국 평균 판매 가격은 4원 오른 1359.45원이며, 서울은 8.72원 오른 1450.97원으로 조사됐다.
대한석유협회와 한국석유유통협회, 한국주유소협회는 이날 공동 입장자료를 내고 "최근 국제유가 상승추세와 유류세 단계적 환원이 겹쳐 소비자 가격도 상승요인이 있는 상황이지만 일시 반영 시 국민 부담이 커질 우려가 있다"면서 "유류세 환원분을 즉시 인상하지 않고 주유소 시장상황 등을 감안해 세금인상분이 서서히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