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일대와 달러
예일대와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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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만만한 대한민국이었음이 또 확인됐다. 선거철을 코앞에 둔 당시 국내 정국을 들었다 놨다 하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게 한 대학의 실수(?)로 증폭된 사건이란다. 허탈하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미국 예일대 박사학위가 가짜라는 예일대 측의 확인 한마디에 미디어들은 마녀사냥에 나섰다. 그놈의 학위가 뭐라고 학위와는 별 관련 없이 재능을 밑천 삼아 일하는 연예인들마저 한바탕 가짜 학위 소동에 휘말렸다.
그런데 소동이 가라앉고 한국의 정치판도도 뒤집어지고 나니 그 예일대에서 자신들의 실수였다는 사과 공문을 슬그머니 동국대학 측에 보냈단다. 필시 과잉 억측이겠으나 갑자기 부시 미 대통령이 예일대 출신이라는 사실이 떠오른다.
사건 내용과는 별개였던 그 가짜학위 파문으로 받아야 할 처벌보다 훨씬 더 만신창이가 됐던 신정아 씨는 지금 자유롭지 않은 상태다. 그런 그에게는 어떤 사과라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신정아 씨를 채용했다는 것만으로 덩달아 오물을 뒤집어썼던 동국대학교는 예일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예일대 측은 대응하겠다고 하면서도 법적 다툼을 피할 길을 찾는 듯 애매한 뉘앙스로 발표를 했다. 물론 동국대 입장에서도 일단 문제 제기를 통해 불명예의 멍에를 벗었다면 굳이 법정 공방으로 마무리 지을 것인지 미지수다.
그런데 이미 지나갔고 또 관심에서도 멀어져버린 이 사건은 실상 한국과 미국의 소위 우호관계(?)의 실상을 보여주는 한 사례에 불과한 게 아닌가 싶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신뢰를 얻으려면 무엇이든 미국의 인정을 먼저 받아야만 하는 게 실상이다. 천하 없는 아이디어라도 미국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하는 가벼운 한국적 풍토를 미국사회는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미국이 어떤 눈으로 한국을 보고 있는지를 한마디로 짚어보기는 쉽지 않다. 다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 실상은 그들의 공식적, 외교적 언사 바깥에서 찾아야 마땅하리라는 점이다.
“한국 국민연금의 미 국채 매입 중단은 장기적으로 미 달러화 강세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미국의 한 투자자 교육 웹사이트가 진단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국의 국민연금이 미국의 국채를 사는 규모는 140억 달러에 불과하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국채 매입 중단을 더 이상 미 국채가 안전한 자산이 될 수 없다는 최후 징표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제껏 월가의 금리인하 요구에 맞춰 달러화 가치를 낮춰왔으나 이제 마지막으로 한국의 국민연금마저 미 국채매입을 중단했으니 더 이상 달러약세를 지속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한국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늘 막차를 탄다는 인식이 없고서야 그런 진단이 나올 수 있었을까 싶다.
지난 주말에는 유엔 아시아 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의 이름으로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경우 한국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3개국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 보고서가 나왔다. 현실적으로 오늘의 유엔이 미국의 시각으로부터 자유스러우리라 믿기는 힘들다. 그 보고서가 또 한국의 경제정책을 어떻게 뒤틀어 놓을지 걱정스럽다.
여러 면에서 미국은 한국에 압도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누구라도 그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한국은 계속 성장해왔다. 상품 생산능력뿐만이 아니라 시장개척, 마케팅 능력도 자랐다. 업종에 따라서는 여전히 대미 수출이 가장 많은 분야도 있겠지만 그간 한국의 수출시장도 꽤 다변화됐다. 어렵기야 하겠지만 그건 다른 수출국 모두가 겪는 어려움보다 조금 더 큰 수준일 터이다. 문제는 미국 발 보고서 한 장이면 한국 내 미디어 여론이 들끓고 정책이 뒤집어지는 일도 드물지 않다는 점이다.
이러니 한국이 만만히 뵌다. 그래서 예일대의 실수가 정말 실수일지 궁금하다. 황우석 파문도 그와 흡사한 순서로 진행됐었지 않은가. 소동 다 지나고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가 1년 이상 멈춰선 후에야 슬그머니 논문은 조작된 게 아니라고.
 
서울파이낸스 주필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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