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박시형 기자] "아직은 과도기적 시기라 증권사들이 차익거래만이 아닌 협의매매로 할당업체들에 배출권을 공급·대여해주는 등 '운용의 묘'를 보일 필요가 있다"
탄소배출권 리서치 전문기관인 NAMU EnR 김태선 대표는 최근 20개 증권사가 탄소배출권 시장에 새롭게 참여한 것을 두고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시장에 들어온 만큼 그 역할을 충실히 할 필요가 있다"며 이 같이 당부했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제3차 게획기간의 배출권허용 총량은 연평균 6억970만톤이다. 그럼에도 배출권 할당량이 타이트하다보니 시장에서는 극히 소량만 유통이 이뤄진다. 2020년 할당배출권(KAU20)의 경우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약 1400만톤, KAU21는 지난 1년간 약 300만톤이 거래됐다.
20개 증권사는 장내 거래를 통해 각 20만톤씩 총 400만톤을 확보할 수 있다.
안그래도 부족한데 경쟁까지 해야하는 할당업체들은 증권사가 곱게 보이지 않는다. 특히 장내에서 차익거래를 벌여 배출권 가격을 올려놓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김 대표는 "전체 시장 규모가 증권시장 상장 기업 하나 정도 밖에 안되는 데다 유통되는 물량은 더 적은데 이 마저 증권사가 흡수해버리면 기능이 아예 정지해버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안으로 상대방과 종목, 수량, 가격을 사전에 협의해 거래하는 '협의매매'를 꼽았다. 증권사가 일단 시장에서 물량을 확보한 뒤 배출권이 필요한 할당업체와 계약을 맺고 협의매매를 통해 '대여'하면 된다는 것이다.
A증권사가 B업체에 필요시 1000톤의 배출권을 10% 이자로 대출해주는 내용으로 계약했다고 가정하자. B업체가 8월 청산을 앞두고 배출권이 700톤 모자란다면 A증권사에서 1000톤을 빌려와 제출한 뒤 다음년도 배출권에 10% 이자(톤당 4만원 적용시 400만원)를 붙여 돌려주면 된다.
이 경우 업체는 배출권 가격의 3배에 이르는 1억2000만원 과태료를 내지 않아도 되고, 증권사는 탄소배출권 가격 변동성 위험에서 자유로워져 '윈윈'할 수 있다. 좀 더 확장하면 증권사가 배출권이 남는 곳에서 빌려와 모자란 곳에 공급하는 중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는 정부가 증권사를 시장에 투입한 목적인 유동성 확보에도 부합한다. 복합적인 거래가 이뤄짐에 따라 향후 선물 등 파생상품이 배출권 시장에 도입됐을 때 업체들의 적응도 더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태선 대표는 유동성 공급을 위해 증권사가 정부의 잔여 물량을 매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31조에 따르면 배출권 거래계정을 등록한 자 중에서 할당업체가 아니거나 시장조성자가 아니면 배출권 거래소에서만 거래할 수 있다.
증권사는 경매나 장외시장에 참여할 수 없어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특히 일부 업체나 증권사들이 확보한 물량을 차익거래를 위해 잠가버린다면 유동성은 오히려 더 축소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정부 보유 잔여분을 일정규모 이내에서 증권사에 팔아 시장에 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정부에서 증권사에 그날 종가로 직접 팔면 유통 물량이 늘어나 가격 안정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증권사가 정부에서 살 수 있는 물량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면 공급량도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