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하, 대출 확대 유인책으로도 활용"
케이뱅크 금리 인하·농협은행 우대금리 확대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시중은행들이 대출금리 인상 속도 조절을 위한 밑 작업에 돌입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금융 당국, 정치권에서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경고 메시지를 잇달아 내놓으면서다. 여기에 올 들어 가계대출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은행들의 대출금리 경쟁이 본격화했다는 점도 금리인하 검토의 배경이 되고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주요 시중은행은 대출금리를 인하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다. 당국이 은행권의 예대금리차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만큼, 저마다 대출금리 인하 방식이나 인하폭, 시기 등을 따지고 있는 것이다.
앞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20일 은행장 간담회에서 "금리 상승기에 은행들의 예대 금리차가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며 "은행들의 지나친 이익 추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같은 날 윤 대통령 역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금리 상승 시기에 취약계층 부담을 덜어줄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과도한 이자 장사를 두고 보지 않겠다는 경고로, 사실상 대출금리 속도 조절을 주문한 셈이다.
정치권에서도 은행이 과도한 폭리를 취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에 힘을 보태는 모양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그동안 시중은행들이 예금과 대출금리 차이로 과도한 폭리를 취했다는 비판이 계속돼 왔다"며 "시장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고통분담 노력을 함께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거듭되는 대출금리 인하 주문에 은행권은 서둘러 대출금리 인하 방안 모색에 나섰다. 대출금리는 기준금리에 은행 내부적으로 책정하는 가산금리를 더한 후 우대금리 등 가감조정금리를 뺀 값으로 산출된다.
이때 은행들은 가산금리와 우대금리를 조정하는 방식을 통해 대출금리를 낮출 수 있다. 가산금리보다는 우대금리 조정이 수월하다는 점에서 우대금리 정책을 통해 대출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통령은 물론이고 금융감독원장, 정치권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은행들의 지나친 이익 추구에 대해 지적한 상황이어서 대출금리를 낮추기 위한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라면서 "가산금리를 조정하거나 우대금리를 통해 사실상 금리 인하 효과를 주는 방안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은행권에선 서민 대출상품을 중심으로 금리 조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게 전세자금대출이다. 치솟는 전세대출 금리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이 많은 데다 실수요와 직결된 대출 금리를 낮추면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을 경감해야 한다'는 당국의 요구에도 부응할 수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여기엔 향후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전세대출 수요를 끌어오는 유인책으로 활용하려는 목적도 있다. 모든 은행이 가계대출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타 상품 대비 수요가 많은 전세대출은 대출 영업의 집중 타깃으로 꼽힌다.
실제 최근 가계대출 감소세에도 전세대출은 홀로 늘어날 정도로 수요가 적잖다. 지난 5월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5851억원 늘어난 132조4582억원으로, 지난 2월 이후 4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같은 기간 각각 5245억원, 6613억원 감소한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신용대출과 상반된 모습이다.
오는 8월 임대차법(계약갱신청구권) 시행 만 2년을 맞아 전세물건이 본격적으로 시세 키맞추기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 터라 부족한 보증금을 대출로 채우려는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수요에 대비해 KB국민·우리은행 등 주요 은행은 전세대출 등을 대상으로 우대금리 적용 등 정책을 시행 중이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거래 자체가 많지 않은 주담대보다는 전세대출을 중심으로 대출 영업을 강화하는 흐름"이라면서 "당분간 전세대출을 원하는 이들이 많아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전세대출 금리 인하를 유인책으로 활용하려는 은행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은행은 당국의 경고 직후 금리 인하 움직임에 나섰다. 케이뱅크가 아파트담보대출과 전세대출 금리를 0.41%포인트(p) 인하 결정을 내린 데 이어 NH농협은행도 오는 24일부터 전세대출 상품의 우대금리를 0.10%p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우대금리 확대는 사실상 대출금리가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시장 안팎에선 은행권의 금리 인하폭에 주목하고 있다. 기준금리와 시장금리 인상으로 금리 부담이 워낙 커진 터라 수요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금리인하가 이뤄질지에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가산금리 조정 등을 통해 은행들이 금리를 낮춘다고 해도 기준이 되는 금리 상승으로 금리 인하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대출금리 상승 곡선을 꺾을 수는 없겠지만, 가산금리 인하가 이뤄진다면 일시적으로나마 이자 상환 부담을 낮춰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