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7월 무역수지는 46억6900만 달러로 지난 4월부터 4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로 인해 올해 들어 7월까지 누적적자 규모는 150억2500만 달러에 이른다.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라고들 하지만 이는 그간 무역규모 자체가 커졌음을 감안하고 볼 일이기는 하다. 다만 적자가 몇 달째 계속되고 있지만 마땅한 대책이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점과 적자폭이 갈수록 커지는 양상이라는 점이 문제다.
특히 그간 한국의 무역수지는 일본과 사우디 등 중동 국가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미국과 중국에서의 흑자로 상쇄시켜왔으나 최근 대 중국 수출이 위축되면서 5월 이후 3개월째 적자로 반전된 상황이 무역적자폭을 확대시키는 주요 변수라는 점에서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이는 전반적인 무역상황 악화와는 별개로 미·중 갈등 속에서 현재의 한국 정부가 선택하고 있는 외교적 스탠스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미`중간 갈등이 심화되고 최근 낸시 팰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까지 겹치며 갈등의 격화 징조마저 보이는 상황에서 코로나 봉쇄조치로 경제성장률 악화를 겪고 있는 중국 경제의 침체까지 겹쳐 한국의 대중국 수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와 안보의 균형을 잘 유지해오던 한국 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지나치게 미국 편으로 기우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한`중간 무역거래에 걸림돌이 놓이게 됐다는 우려를 거두기 어렵게 한다.
향후 몇 년간 세계 경제는 대체적으로 비관적 전망을 낳고 있다. 애초에 미국이 중국에 대한 무역분쟁을 일으킬 당시에는 단순한 중국 길들이기 차원에서 시작된 측면이 있지만 그 당시에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됨으로써 전 세계 산업생태계는 교란되기 시작했다. 팬데믹 상황에서 갈등을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미국이 정책적 판단을 내렸을 뿐만 아니라 그 판단의 외피를 냉전시대 진영논리로 덧씌움으로써 중국과 러시아 간의 공조·연대를 강화시키는 악수를 두었다. 그에 더해 생존위기로 내몰린 북한마저 과거보다 더 적극적으로 그 연대의 틀에 몸을 밀어 넣으려는 행동을 보인다.
미국은 또 미국대로 이들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 뒤에 붙으라고 공공연히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렇다고 과거와 같지 않은 미국의 위력 앞에 각자 발등에 불 떨어진 세계 각국은 저마다 말 그대로 각자도생의 활로 찾기에 나서는 형국이라 미국말에 무턱대고 따르지는 않고 있다.
그런 시류 속에서 유독 한국은 지난해까지 잘 유지해오던 선택적 외교전략을 포기하고 일방적인 미국편을 들고 나섰다. 최근 문제를 만들었던 대만 방문 직후 한국을 방문한 낸시 팰로시 미 하원의장에 대한 한국 정부의 무성의한 대응을 두고 보수 일각에서는 정부가 지나치게 중국 눈치를 보는 게 아니냐고 불평하기도 하지만 그만큼의 고민을 담은 행동인지는 판단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보다는 차라리 미국내에서 의전서열 3위라고는 하지만 몇 달 후면 물러날 낸시 팰로시의 정치적 영향력을 낮게 평가하고 무시하는 행동은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우리가 중국을 소홀히 여기는 것도 위험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국가적 자부심을 가벼이 여길 처지도 아니다.
적어도 현역에 있는 국가 핵심인사가 홀대받는 것을 국가적 명예와 분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비록 바이든이 낸시 팰로시가 만들어낸 골칫거리 사안을 뒷수습하기에 골머리를 썩일 지언정 적어도 밖에 나가 푸대접받는 꼴도 속없이 보고말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공식적으로야 무어라 표현하기 어렵겠지만 현 정부가 미국에 보낸 애정표현에 대한 신뢰는 희석될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다고 이 정도에 토라진 중국이 쉽사리 한국 정부를 신뢰할 것 같지도 않고.
해안가를 끼고 있는 필자의 고향에서는 이런 경우를 두고 '게도 구럭도 다 놓쳤다'는 표현을 쓴다. 하나를 얻으려고 다른 하나를 소홀히 여기고 허둥대다 둘 다를 잃는 어리석음을 빗댄 말이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갈등하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편들며 호가호위하려다가는 자칫 양쪽 모두로부터 외면당하고 빈손가락만 빠는 불상사가 생길까 싶어 근심이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