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폭탄 돌리기'식 공공요금 인상
[데스크 칼럼] '폭탄 돌리기'식 공공요금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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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초 서정협 당시 서울시장 직무대행을 만난 적이 있다. 기자는 그해 4월 '보궐선거'를 앞둔 터라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그에게 "직무대행 임기 중 가장 아쉬운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유고(有故)로 생긴 서울시 행정 공백을 메워야 하는 동시에 처음 마주한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천만 서울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할 때라 이와 관련된 대답을 예상했지만, 되돌아 온 답은 예상을 빗나갔다. 시장 직무대행을 맡는 동안 지하철 등 대중교통 요금을 인상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못한 점을 가장 큰 아쉬움으로 꼽았다.

그 이유는 정치인 출신 서울시장은 선거를 감안해 공공요금 인상에 선뜻 나설 수 없는 반면 '늘공(직업 공무원)' 출신은 이런 부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에 시민들이 고통 받고 있기 때문에 요금 인상마저 나설 수 없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최근 버스·지하철 요금을 비롯한 공공요금 인상이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2015년 이후 8년 만에 지하철·버스 요금 인상을 추진 중인 서울시는 "오는 4월로 예정했던 요금인상 시기를 올해 하반기로 미뤘다"고 지난 15일 밝혔다. 고물가로 가중된 서민 가계부담을 완화하고, 정부의 공공요금 상반기 동결기조에 호응한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며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고속도로·철도·우편·광역 상수도 등 공공요금은 상반기에 동결하고 에너지요금에 대해선 인상 속도를 완만하게 늦추겠다고 밝혔다.

한국도로공사(고속도로 통행요금), 한국공항공사·인천국제공항공사(공항 이용료), 코레일(여객 열차 운임) 등도 여러 이유로 줄줄이 요금 인상에 나설 태세였지만, 현 상황에서 상반기 요금 인상은 사실상 물 건너 간 분위기다.

문제는 '반 강제적'으로 묶어 놓은 요금 인상이 하반기에 집중돼 동시 다발적으로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난방비 폭탄'에 이어 하반기 '공공요금 폭탄'이 서민들의 어깨를 짓누를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정부 입장에선 지난해 5월부터 9개월째 이어진 5% 이상 고물가를 수수방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1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작년 같은 달보다 5.2% 올랐다. 지난해 물가 상승의 주범인 석유류의 상승세는 한풀 꺾였지만, 전기·가스·수도 등 공공요금이 치솟으며 고물가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우려스러운 대목은 22대 총선(2024년 4월10일)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여·야 모두 표를 의식해 대중교통 요금이나 공공요금 인상과 같은 '뜨거운 감자'에는 손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 사이 '신박한 대책'이 나와 요금 인상을 고민하지 않으면 더 없이 좋겠지만, 현 상황에선 그럴 가능성이 극히 낮아 보인다.

서민생활에 미치는 파급력 등을 감안할 때 공공요금 인상은 신중해야 하고,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요금을 묶어두는 것 역시 미봉책일 뿐이다.

이보다는 요금 인상에 대한 원가 산정 등 정당한 근거로 국민들을 설득시키는 한편, 요금 인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이들 기관의 자구노력 등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팍팍해진 살림살이에 시름하는 국민들은 언제 청구될지 모르는 '공공요금 폭탄'이나 '땜질식 처방'보다는 예측 가능하면서도 인상폭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원하기 때문이다.

정치권 역시 인위적으로 누른 공공요금이 임계점에 다다를 경우 '요금폭탄'으로 되돌아온다는 점을 망각해선 안 될 것이다. 복합위기 앞에서 공공요금 인상 논의가 또다시 한가롭게 정쟁의 소용돌이가 될지 우려스럽다.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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