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법정 최고금리 인하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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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급전이 필요한 서민을 위한 '최후의 보루'로 불리는 대부업 이용자 수가 지난해 말 10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대부업을 이용하는 이들은 2020년 말 138만9000명에서 2021년 말 112만명으로 줄어든 뒤 지난해에는 결국 100만명 선도 무너졌다.

이는 형편이 나아져 대부업자에게 손을 벌리는 사람이 줄어들었다는 긍정적인 신호일까. 해당 질문에 금융 당국 관계자도, 대부업 관계자도 모두 단호히 고개를 내젓는다. 대부업 이용자 수 감소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불법사금융으로 밀려난 저신용자들이 그만큼 늘었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실제로 이용자 수 감소는 대부업자들의 개인 신용대출 감소에 기인한다. 법정 최고금리가 연 24%에서 20%로 낮아진 후 수익성이 나빠진 대부업자들이 안전한 담보대출을 늘리는 대신 신용대출은 취급을 꺼리면서 이같은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2020년 7조3677억원이던 신용대출 잔액은 2021년말 7조298억원에서 지난해 말 6조9630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 반면 담보대출은 같은 기간 7조1686억원에서 7조6131억원, 지난해엔 8조9048억원으로 몸집을 불렸다. 담보대출 비중은 2020년 49.3%에서 지난해 말 56.1%까지 높아진 상태다.

결국 담보도 없고 신용이 낮은 서민들은 급전 마련을 위해 불법사금융으로 발길을 돌렸을 가능성이 크다. 대표적인 게 내구제 대출이다. '나를 스스로 구제하는 대출'이라고 해서 내구제 대출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이는 소위 '깡'이다.

본인 명의로 휴대폰을 개통하고 이를 넘기는 대신 급전을 융통하는 방식인데, 피해자들은 추가로 납부할 금액이 없거나 적은 것처럼 안내받았음에도 추후 통신료와 함께 막대한 소액결제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절박함에 내몰린 피해자들의 심리를 악용하고 있는 탓에 사회초년생이나 취업준비생 등 청년층을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지만, 법 사각지대인 터라 피해 보상은커녕 처벌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당연히 피해는 고스란히 차주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법정 최고금리가 20%로 낮아진 상황에서 한국은행의 연이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조달비용이 급격히 오른 2금융권은 저신용자 대출 문턱을 높이는 실정이다. 대부업계는 아예 대출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자산 규모가 크다 하는 대부업체들도 신용대출 취급을 중단한 것은 물론, 대부업계 1위인 러시앤캐시(아프로파이낸셜대부)는 예정보다 6개월 이른 올 연말 사업을 철수하기로 했다. 대출을 내주는 곳은 없는데 수요는 많다 보니 불법사금융이 자라날 토양이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야말로 악화일로다.

이렇다 보니 금융권 안팎에선 연 20%에 묶인 법정 최고금리를 시장금리나 기준금리에 연동시키는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장 상황에 맞게 금리를 조절하자는 얘기다. 세부적인 의견엔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최고금리 제도를 다시 살펴봐야 한다는 의견은 같다.

전문가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국회에선 되레 법정 최고금리를 연 12%까지 낮춰야 한다는 법안들이 줄줄이 계류돼 있는 상태다. 서민의 이자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다.

물론 최고금리 인하는 겉으로 봤을 때 매력적인 방안이다. 다만 저신용자들이 합법적으로 대출받을 수 있는 길이 원천 봉쇄되는 부작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선의로 시작했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불법사금융으로 등 떠밀리는 저신용자들이 폭증하는 지금이라도 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를 행동으로 옮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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