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금리의 정치학
[홍승희 칼럼] 금리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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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준이 7월 중 다시 금리를 올리면서 한·미 간 금리역전 폭이 다시 최고 수준을 경신했다.

비록 0.25%의 베이비 스탭이었지만 이미 사상초유의 금리역전 폭을 갖고 있던 한국은 이번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그 격차가 2.0%p로 더 벌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 다음달 금리인상 여부를 결정해야 할 금융당국의 고민은 더 깊어지게 됐다. 미국의 금리인상 발표가 나오자마자 환율은 1300원을 밑돌게 되었고 아직은 외국인자금의 순유입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을 따라 금리를 올리기에는 국내의 여러 금융상황이 매우 불안하다. 지난 달까지 잇단 금리동결을 신호탄으로 인식한 시장에서는 가뜩이나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성장해온 가계부채가 오히려 더 늘어났고 2금융권이 과도하게 일으킨 부동산 PF 문제가 이미 부도위기를 부르는 상황이다.

부동산 PF 문제는 단순히 좀비화한 다수 건설사의 부도위험 증가로 그치는 게 아니라 금융시장 안정성이 흔들리는 폭탄이 돼 있어서 금융당국 뿐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섣부른 행동을 주저하게 만든다.

반면 환율이 흔들리면 가뜩이나 어려워진 수출 여건에 다시 타격이 더해지는 일이기도 하다. 내수시장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한국경제의 현실에서 수출상황 악화는 국내 일자리 위기, 소비감소 등 경기위축으로 이어질 위험한 요소다.

게다가 아직은 외국인 자금의 순유입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이런 현상에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과거 외환위기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봐도 이런 추세가 삽시간에 대량 유출로 반전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금융시장이 당국의 금리정책 향방에 주목하듯 미국의 자본시장 역시 연준의 향후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파월 연준 의장은 연내 금리인하 가능성은 부인하면서 추가 인상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입장을 밝혔지만 월가에서는 그래도 이제 금리인상은 마침표를 찍었을 것이라는 기대를 보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외국인 자금이 지금 몰려다니는 길은 높은 수익성보다 안정성에 더 치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즉, 한국에 투자된 외국인 자금이 지금 관심을 집중하는 부분은 한`미간 금리격차 보다는 현재의 금리정책이 향후 시장을 충분히 안정화 시킬 만한가일 것이라는 얘기다.

당국이 당장의 발등에 떨어진 불에만 관심을 쏟으면서 한국경제의 기초체력을 갉아먹는 선택을 할 경우 한국시장 자체가 위험한 시장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고 그럴 경우 삽시간에 외국인 투자자금들이 빠져나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당시와 비교해 현재 한국의 경제규모가 커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자금의 쏠림현상에 버틸 힘이 충분하다고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정치적 계산이 금융정책에 더 이상 과도한 개입를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아직도 우리가 IMF사태로 부르며 당시를 기억하면 진저리가 쳐지는 장년 이상의 세대에게 외환위기 당시 정부의 안일한 상황인식이 얼마나 터무니없었는지 또한 잊을 수 없다. 당시 이미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에서 외환위기의 도미노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지만 당시 한국의 당국자들은 한국은 안전하다고 헛소리를 했다.

당시 모 신문사 논설위원으로 재직 중이던 필자가 위기를 외면하지 말아야 함을 지적하는 글을 썼지만 회사 차원에서 지나치다는 지적과 함께 글을 수정하도록 요구받은 적이 있다. 그 때 구실은 3대 메이저신문이 아닌 한 이 정도의 비판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정부의 압박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정부가 민주정부를 표방한 당시 청와대의 입장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 기획재정부로 통합된 당시 경제기획원과의 마찰을 두려워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언론지형이 당시보다 더 편안하게 정책을 비판할 수 있는 상황인지 확신이 없다.

지금 정부가 사회정치적으로 해법을 찾아야 할 문제들까지 그야말로 수미일관하게 금융정책 하나로 풀고자 함으로써 오히려 금융시장의 안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이 필요하다. 정부 요구에 적극적으로 반발하거나 거부할 지는 미지수이고 비록 원론적 얘기일망정 한은총재가 지난 달 한 발언은 깊은 고민의 결과임이긴 한데 메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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