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은 강달러·中경기둔화···주요국 중 절하폭 가장 커
1300원 중반대 지속 전망···1350원 돌파 여부 '관건'
[서울파이낸스 신민호 기자] 원·달러 환율이 한달새 80원 넘게 급등하며 연고점을 경신했다. 글로벌 달러 강세 흐름과 중국 경기둔화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지만, 주요국 중 가장 큰 약세를 보이며 수난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가파르게 하락한 원화 가치의 원인과 향후 전망 등을 진단해본다.
1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장중 1343원까지 상승하며, 석달 만에 연고점(5월 17일, 장중 1343원)에 도달했다. 이는 한달 전인 7월 18일(종가, 1260.4원) 대비 82.6원이나 급등한 수준이다.
앞서 원·달러 환율은 올해 2월 2일 장중 1222.7원까지 떨어졌지만, 미국발 인플레이션 경계감이 확산되면서 같은 달 1300원을 돌파했다. 이후 지난 5월 월평균 1328.21원 수준까지 올라왔지만,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이 막바지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지난달 중순 1360원선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한달 새 원화 가치가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연고점에 도달한 것이다.
특히 원화 약세는 다른 주요국과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최근 한달간 원화 가치 하락폭은 -6.6%로, △EU 유로(-3.5%) △영국 파운드(-3.1%) △중국 위안(-1.7%) △일본 엔(-5.5%) 등에 비해 그 폭이 크다. 더구나 일본 엔화의 경우 통화완화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원화 가치 하락폭은 더욱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최근 한달 간 환율 상승세를 분석해보면, 크게 △1기(7월 19~25일) △2기(8월 2~8일) △3기(8월 11~17일) 등 3개 구간으로 구분된다. 이 중 1~2기는 미국측 요인, 3기는 중국측 요인에 기인한다.
◇점증하는 불확실성에 돌아온 '강달러'
먼저 1기 상승세를 이끈 것은 미국의 고용이다. 20일(현지시간) 발표된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주간, 22만8000건)가 2주 연속 둔화되며, 시장 전망치(24만건)를 크게 하회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주 발표된 청구건수(22만1000건)도 시장 예상치(23만5000건)를 밑돌며, 고용 부문이 여전히 견조함을 나타냈다. 통상 높은 고용률은 임금발 물가 상승 압력을 높여, 연준의 긴축 경계감을 자극하는 재료다.
앞서 시장은 연준이 7월 금리 인상을 끝으로 금리인상을 종료할 것이라 낙관하고 있었으나, 해당 발표 직후 긴축 경계감이 부상한다. 99선을 맴돌던 달러인덱스는 100선을 돌파했고, 미 국채금리는 단기물을 중심으로 상승세를 기록했다. 이에 21일 원·달러 환율은 전장 대비 13.5원이나 급등했다. 견조한 고용이 이어지면서 연준의 긴축정책이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서다.
이어 원화 약세 2기는 미 국가 신용등급 하락에서 비롯됐다. 지난 1일(현지시단)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미 국가 신용등급을 기존 'AAA'에서 'AA+'로 하향 조정했다. 이는 지난 2011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신용등급 강등 이후 12년 만이다. 피치는 향후 예상되는 재정 악화와 국가채무 부담 증가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특히 미 재무부가 올해 3분기 차입금 추정치를 3000억달러 상향하는 리펀딩 계획을 밝히면서 국채금리와 달러인덱스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이에 해당 발표 전후인 지난 1~4일 원·달러 환율은 총 35.2원이나 급등했다.
나아가 미국채 30년물 입찰에서 해외수요가 크게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미국채 금리는 장기물 중심으로 급격한 상승세를 보였다. 또 다른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미국 지방은행 10곳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는 등 곳곳에서 리스크가 터져 나왔다. 이에 위험선호심리는 급격히 위축된 반면,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달러는 강세를 보이며 원화 가치를 끌어내렸다.
◇'D'의 공포에 부동산 위기론까지···中 리스크 부각
이런 상승세에 기름을 부은 것이 이른바 '차이나리스크'다. 지난 9일 중국 국가통계국은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전년 동기 대비 0.3%, 4.4%씩 하락했다고 밝혔다. 두 지수가 함께 하락한 것은 코로나 팬데믹 직후인 2020년 11월 이후 3년 만으로, 사실상 디플레이션에 빠졌다는 평가다.
이뿐만 아니라 7월 중국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5%나 줄며, 2020년 2월 이후 3년 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또한 소매판매는 2.5%, 산업생산은 3.7%씩 증가하며, 시장 예상치(4.5, 4.4%)를 밑돌았다. 7월 실업률도 전월 대비 0.1%p 상승했다. 이렇듯 수출·소비·생산·고용 등 주요 경제지표가 일제히 악화되면서, 사실상 중국은 경기침체에 들어섰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방점을 찍은 것이 부동산 연쇄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다. 지난 14일 중국 최대 규모의 부동산개발업체 '컨트리가든(碧桂園, 비구이위안)'의 역내채권 11종의 거래가 전면 중단됐다.
앞서 컨트리가든은 지난 6일 만기된 채권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에 대한 이자(2250만달러, 약 300억원) 상환에 실패하면서, 30일간의 유예기간을 갖게 됐다. 해당 기간 이자를 지불하지 못하면 최종 디폴트(채무불이행) 처리된다.
현재 컨트리가든은 약 3000건의 건설프로젝트에 관여한 상태로, 이는 지난 2021년 파산위기에 몰린 헝다 그룹의 4배에 달한다. 사실상 중국 GDP(국내총생산)의 1/4을 차지한 부동산 업계 전반의 연쇄 디폴트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부동산 경기 회복을 위해 다양한 부양책을 준비했던 중국 정부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 결과 달러당 위안화 가치는 10일 달러당 7.163위안선에서 현재 7.316위안까지 절하됐고, 위안화의 '프록시(Proxy·대리)' 통화로 불리는 원화 가치를 함께 끌어내렸다. 실제 원·달러 환율은 지난 10일 1316원에서 17일 1343원으로 27원이나 급등한 결과 연고점에 도달했다.
◇1300원 중반의 약세 지속···지지선인 1350원 돌파 여부 '관건'
이런 환율 상승세(원화가치 하락세)는 어디 선까지 지속되느냐의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에 대해 다수의 시장 전문가들은 1300원 초중반대의 원화 약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향후 원화의 추가 약세 압력은 제한될 것으로 판단되나, 현재 환율 흐름은 원화 약세뿐만 아니라 글로벌 강달러에 기인한다"며 "미국의 상대적 경기 우위, 금리 차 축소 전망 약화 등을 고려하면 중장기 달러 강세 압력이 이어질 가능성 높다. 미 금리 상승세가 지속될 경우, 비달러 통화의 약세 압력은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오창섭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을 보면 작년 4분기 스태그플레이션 상황과 유사하다"며 "미 국채금리는 당시 고점에 도달했으며, 연준의 매파적 기조 등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 역시 강달러와 함께 상승세로 전환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지금은 일종의 분기점이다. 만약 1300원대 중반까지 상승할 경우 주식시장 불안과 함께 통화정책 측면에서 우리 경제의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며 "반대로 현 수준에서 약보합권에 머물다 점차 하락하는 양상을 띠는 것이 긍정적 시나리오다. 현재 수준에서 급격히 떨어지긴 어렵다"고 내다봤다.
지금보다 원·달러 환율이 크게 뛰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현재 원화 약세폭은 주요국 중 가장 큰 편이다. 위안화 약세, 외국인 자금 이탈 등의 여파지만, 향후 약세 흐름을 선반영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며 "통화당국의 경계감도 환율 상승세를 제약할 것이다. 실제 오늘 연고점에 달했던 환율이 1340원 초반에서 막혔으며, 향후에도 지지선인 1350원선을 방어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김찬희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위험회피심리가 추가 강화될 경우 1350원을 일시적으로 상회할 수 있지만, 그 기간은 길지 않을 것"이라며 "3분기까지 1300원 중심 박스권 등락 이후 연말 1200원대 중반까지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4분기로 가면서 긴축 완화 기대가 살아날 경우, 대외 강달러 압력은 더욱 잦아들 것"이라고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