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오락가락' 정책에 산으로 간 가계빚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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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현재 가계부채 확대가 당장 금융안정 등에 영향을 주는 수준은 아닙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10일 유관기관과 함께 연 '가계부채 현황 점검회의'에서 나온 발언이다.

이날 참석자들은 갈수록 가팔라지는 가계 빚 증가세를 두고 "아직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면서도 선제적으로 관리해 나갈 필요성에 공감했다. 증가세가 확대·지속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날 회의를 기점으로 당국은 가계대출 죄기에 본격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집중 관리 대상으로 지목한 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과 '인터넷전문은행의 비대면 주담대'다.

50년 만기 주담대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통하며 빚내는 걸 부추기고 있다는 이유에서, 인터넷전문은행들은 낮은 금리를 앞세워 공격적인 주담대 영업에 나선 탓에 가계대출을 늘린 주범으로 몰렸다.

특히 인터넷은행의 경우 비대면으로 주담대를 취급하는 특성상 대출심사를 느슨하게 하면서 주담대를 늘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당국의 비판을 받았다.

사실 한국의 가계부채 확대가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더욱이 정부가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해 내놓은 각종 규제 완화에다 상생금융 압박으로 인한 대출금리 인하, 특례보금자리론 도입 등이 되레 대출 수요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최근의 가계대출 급증은 예견된 일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불씨를 키웠기에 가계부채 관리에 느슨했던 건 은행권이 아니라 당국이 아니냐는 곳곳의 날선 비판을 피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가계 빚을 자극하는 주범으로 낙인이 찍힌 건 금융사들이었다.

당국의 눈총에 업계는 불똥이 튈까 봐 분주히 움직이는 분위기다. 가계대출의 문이 빠르게 좁아지고 있는 것. 먼저 50년 만기 주담대를 취급하던 NH농협은행은 '한도 소진'을 이유로 지난달 말 해당 상품을 없앤데 이어 이달 들어선 보험사들을 비롯한 금융사들이 일제히 판매 창구를 닫았다.

문이 좁아지는 건 50년 만기 주담대와 함께 가계부채 증가 원인으로 꼽혔던 인터넷전문은행 주담대도 마찬가지다. 가계대출 현장 점검에 나서는 등 규제 강화 방침을 내놓자 금리를 올리거나 대출 요건을 강화하는 등 서둘러 움직임에 나선 상태다.

당국과 금융사들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큰 혼란에 빠진 건 언제나 그렇듯 소비자들이다. 규제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출을 미리 받아 두려는 이들은 은행 창구로 몰렸고,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 급증세의 도화선이 됐다.

실제로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은 7월 대비 1조6000억원 가까이 늘며 1년 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규제를 앞두고 몰린 막차 가수요의 영향이라지만 그만큼 혼란 가중과 함께 많은 이들의 '불안 심리'가 커졌다는 걸 방증하는 대목이다.

물론 그간 가계부채를 두고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며 방관하던 당국이 심각성을 깨닫고 관리 모드에 돌입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한국 경제를 뒤흔들 뇌관인 가계부채 관리가 시급하고도 중요한 문제라는 점에서 모든 역량을 동원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다만 중요한 일일수록 문제 해결에 필요한 것은 책임 전가가 아닌 정확한 진단이다. 금리 인하 기대감이 빠르게 퍼지며 가계대출 확대 흐름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우려가 가득한 상황에서, 정확한 진단 없는 '땜질식 처방'은 시장의 혼란을 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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