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인플레이션 잡힐까
[홍승희 칼럼] 인플레이션 잡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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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콕 집어 정의하는 경제학자들의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지만 한국은 불경기 속에 소득증가의 기미는 없이 물가는 속절없이 오르니 분명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이다. 이달 들어 정부는 오랜만에 무역흑자를 기록했다고 산업자원부가 자랑스럽게 보도자료를 냈지만 문제는 수출도 줄고 수입도 줄어 결과적으로 무역규모 자체가 쪼그라든 현상을 자랑할 일인지 의문이다.

국내총생산 중 무역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경제의 구조 속에서 무역규모가 줄었다는 것은 성장둔화를 넘어 마이너스 성장의 징후다.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보니 국가 경영에서 이 부분을 매우 소홀히 취급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미 저성장 단계로 접어든 상태에서 이런 정책적 태도는 위험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인플레이션은 근원물가마저도 국내적 상황보다는 국제적 상황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 무역중심 경제체제이다 보니 세계경제의 사이클이 하강국면에서는 맨 앞에서 그 충격을 받는다.

요즘처럼 진영논리가 기승을 부리고 또 나서서 한편에 줄서기를 한 형편으로는 싸움의 주도국인 미국의 경제상황에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그런 미국 자체가 지금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아 고민이 크다.

인플레이션 열기가 가라앉지 않아 계속해서 금리를 올리고 있고 당분간은 고금리 상황을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요즘의 전반적인 진단이다. 달러는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세계 제1의 안전자산이라 믿어왔던 미국 국채가격은 발행가격을 밑도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소비자 부문의 비중이 큰 미국의 경우 소비자물가 동향은 한국보다 예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개도국으로부터 공급되는 저가 상품들로 물가안정을 구가하던 미국의 상황은 중국과의 무역분쟁을 촉발하면서 급변했다.

중국 인건비가 많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서 그 가격에 물건을 생산, 수급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간 중국이 공급해왔던 저가 상품들을 대체할 국가를 찾기도 쉽지 않다. 생산국을 찾는 것이야 가능하지만 중국만큼 대량공급을 할 역량을 갖춘 나라를 찾기 어렵다는 얘기다.

게다가 미국 소비자를 위한 저가상품의 생산자 역할에 계속 머무르려 할 국가는 없다. 미국이 중국의 급성장에 두려움을 느끼고 1위 국가로서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거푸 무리수를 두고 있지만 지금의 조급증은 결국 지도국으로서의 미국의 입지를 약화시킬 뿐이다.

중국 한 나라만을 포위공격하기에도 버거운 미국이 러시아와도 등을 돌림으로써 진영 갈라치기를 한 것도 패착이지만 지금 ‘함께 가자’고 손 내민 우방국들에게도 과도하게 빼앗아가려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일련의 행동들로 스스로의 영향력에 흠집을 내고 있다. 한국의 기업들을 자국 내로 유치한 것까지는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확한 효과를 올릴 수단으로서 이해 받을 수 있었지만 자국 기업들과의 차별적 대우는 신뢰를 상실하는 어리석은 수였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미국의 강점은 개척이었다. 신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냄으로써 비교 불가능한 선도국의 지위를 유지해온 그 강점을 지금은 미국 스스로 버리고 후발주자들과 격투를 벌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함으로써 이제까지 누려온 우월적 지위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기축통화국이기에 무역적자가 마땅한 것이라고 경제학자들은 말하지만 미국 정치인들은 그런 논리를 수용할 수 없어서 양손에 떡을 쥐기 위한 무리수를 계속 두고 있는 것이다. 달러는 아직 대체통화가 없어서 여전히 강세를 보이지만 기축통화국이기에 누렸던 무제한의 발권력을 통해 실질적 가치를 훼손했다는 사실이 미국 국채가격의 폭락으로 증명되고 있다.

그 여파로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쉽게 진정되기 어렵다. 그런 미국의 사정은 전 세계로 그 인플레이션을 확산시키며 고통을 전가시킨다.

한국은 이런 미국의 논리에 거의 무저항으로 끌려들어가며 스태그플레이션의 함정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정부는 전 세계적인 금리인상 레이스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그런다고 물가가 잡히지도 않는데 이대로 괜찮은가. 외환보유고는 쑥 빠져나가 과거의 외환위기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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