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자본주의 성장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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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자본주의 총본산이 미국이라는 데 특별한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미국의 경제정책이나 흐름이 요 근래 들어 꽤 수상하다.

팬데믹 이후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예상을 뛰어넘는 금리인상을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물가상승률은 꺾이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 상승률이 다소 둔화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상승추세 자체가 수그러들었다고 보기에는 미흡하다.

시중에 풀린 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고금리정책을 벌이는 한편에서는 그 부작용으로 파생된 뱅크런 등 위기가 닥친 금융기관들의 파산이 도미노현상으로 치닫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긴급처방이 쏟아지며 거둬들이는 돈 못지않게 풀려나가는 돈을 무시하기 어려운 엇박자가 나온다. 실적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기업자금 조달압박, 국고채 가격의 하락 등 세계 최고 안전자산의 신뢰에 손상이 가는 현상, 즉 달러의 위기까지 여기저기서 위험신호들이 터져 나오고 또 그때마다 임기응변하느라 분주한 미 재무부의 모습은 아무리 미 정부가 금융위기가 아니라고 주장해도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자본주의는 물론 금융산업의 발전과 함께 해왔지만 근래의 금융산업 비대화는 산업생산력과의 불균형을 극대화한 비정상적 현상이다. 실물의 크기를 월등히 능가하는 금융자본의 성장은 사실상 자본의 버블이지만 그럴싸한 경제이론들로 실상을 파악하기 힘든 포장을 해왔다.

한때 일각에서는 자본주의는 이념이 아니라는 식의 주장도 있었지만 경제이념이라는 것들은 결국 인간 개개인의 욕망과 그 욕망의 지표로서의 자본이 공동체의 이익과 어떻게 타협하고 적정한 선을 찾아가느냐에 대한 기준을 둔 갈등의 표현이다. 자본의 탐욕이 극단화됐던 산업화 초기에 그에 대한 반동으로 공산주의 이론이 등장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이론 단계를 넘어 현실화하는 단계에서 결국 자본의 힘을 대신하는 정치권력이 등장하고 그 정치권력을 장악한 인간들의 이기심이 자본가의 이기심을 뛰어넘으며 독재화하는 과정을 겪으며 스스로 소멸되어 갔다. 하지만 그런 공산주의를 소멸로 몰고 가는 데는 자본주의 자체가 공산주의의 비판 일부를 수용하며 자기 생존력을 높인 수정주의적 태도가 큰 몫을 했다.

그러나 냉전시대를 벗어난 후 자본은 글로벌화하며 더 이상 견제할 대상이 사라지고 독점적 탐욕의 시대로 들어섰다. 금융자본은 실물경제와 유리되어 독자적으로 몸집을 불려나가 정책적 처방의 실효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생명체에 깃든 세균이 오래도록 생존하기 위해서는 숙주가 살아있어야만 한다. 금융자본 역시 인류공동체의 건강한 존립이 바탕이 될 때 더 왕성한 성장을 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이 실물경제를 월등히 웃도는 금융자본의 자가 증식은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흐름을 지나치기 가속화시킴으로써 부의 양극화를 촉진하고 결국 숙주인 인류공동체의 생존을 위협한다.

이 단계에서 자본주의는 그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새로운 탈바꿈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꽤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근래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을 앞세우며 자국 기업 우선주의를 공공연히 실천하는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정부를 대리인으로 내세운 자본의 탐욕스러운 선택들은 인류의 공생을 위한 공공선을 외면하게 만들고 종종 인류의 재앙을 증폭시키는 위험한 행동을 부추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이제까지 그래왔듯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집단지성이 발휘되며 함께 생존하는 길을 찾아왔다. 자본주의 자체가 인간의 욕망을 최대한 긍정함으로써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기에 인위적인 어떤 이념보다 현실성을 갖고 있지만 그 자본주의의 지속적 존립을 위해서는 종종 그 욕망이 제동을 걸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해야 하는 역할이 그 적절한 제동을 걸어 그 국가의 추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어야 하지만 요즘처럼 개별 국가들이 각자도생을 모색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린 시대에는 그런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치인들의 입장에 따라 내거는 명분이야 어떻든 실질적으로는 자본의, 특히 자국 자본의 요구에 휘둘릴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래서 역사적 통찰력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지도자의 존재가 매우 중요하지만 국가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민생이 취약해질수록 사악한 통치자를 추종하는 국민들이 늘어날 위험성도 커진다. 1차 대전 패전 이후의 극악한 궁핍 속에서 독일인들이 나치를 선택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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