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가계부채 증가율 0%, 자화자찬 금융위···사라진 '위기의식'
[초점] 가계부채 증가율 0%, 자화자찬 금융위···사라진 '위기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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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부들과 비교하며 정책 성과 '부각'
'갈지자' 가계대출 규제에 시장혼란 '가중'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7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경기 둔화, 고금리 등 각종 악재 속에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가계부채를 두고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최근 금융위원회가 "가계부채를 안정적으로 잘 관리하고 있다"는 내용의 공식 자료를 배포해 논란이 되고 있다.

금융위는 가계부채가 크게 늘었던 지난 정부들과 비교하며 "상대적으로 현 정부의 부채 증가 규모가 크지 않았다"는 논리를 내세웠는데 성장률, 금리 등 시장 환경이 달랐던 지난 정부들과의 직접적인 비교가 적절했냐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 출범 당시인 지난해 2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가계부채는 1700억원 감소했다. 이 기간 동안 월평균 100억원의 가계빚이 줄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그에 따른 연평균 증가율은 0% 수준이다.

반면, 지난 8일 금융위가 '최근 가계부채 주요이슈 관련 Q&A' 자료에서 밝힌 문재인 정부(2017년 1분기~2022년 1분기) 시절 가계부채 증가액은 520조4000억원이다. 월평균 증가폭은 8조7000억원, 연평균 증가율은 6.5%다. 증가액만 놓고 보면 비교 대상 정부(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금융위는 이같은 결과에 대해 "현 정부 들어 가계부채 총량이 감소됐고 연간 가계부채 증가율도 0% 수준이다"라며 "과거 어느 시기와 비교해도 가계부채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지난 정부 때와의 비교가 적절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로 유례없는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유동성이 풍부했던 시기다. 당시 기준금리는 연 0.5%(2020년 5월~2021년 7월)까지 낮아지기도 했다.

당시 금리가 낮아지면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빚투(빚내서 투자)' 열풍이 불었고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등 각종 가계부채가 급격히 늘었다. 결과적으로 역대 정부들 대비 문재인 정부에서의 가계부채 증가 규모가 가장 커지게 됐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기준금리가 유례 없이 빠르게 오른 시기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코로나19 앤데믹(풍토병화) 이후 시중에 풀린 유동성을 회수하고자 통화긴축 기조로 돌아섰고, 이에 맞춰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빠른 속도로 인상했다. 윤 정부 출범 당시 연 1.50%였던 기준금리는 이후 6번의 인상을 단행, 연 3.50%까지 올랐다.

문재인 정부와 비교하면 기준금리는 2%p(포인트) 가량 더 높다.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시중은행에서 취급하는 가계대출의 금리도 2%p 넘게 상승했다. 지난 정부 당시 최저 2%, 최대 3% 수준이었던 주요 시중은행의 주담대 금리는 현재 최저 4%, 최대 7% 수준까지 오른 상태다.

대출금리가 오르면 차주들의 상환부담은 악화된다. 예컨대, 몇 년 전 연 3.2% 금리로 주담대(만기 30년) 3억원 받았다가 현재 금리가 연 5.9%로 오른 차주라면 월 원리금 상환액은 129만7401원에서 177만9410원으로 48만2009원 증가한다. 여기에 신용대출까지 받았다면 이자부담은 더 늘어난다. 

윤 정부 초기 가계부채 증가세가 대폭 줄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리가 오르면 통상 대출 수요는 줄어든다. 특별히 현 정부가 가계부채를 더 조이거나 관리를 철저히 했기 때문에 증가세가 안정화된 게 아니란 설명이다.

오히려 윤 정부는 부동산시장 연착륙을 위해 대출규제를 일부 완화하는 조치를 지난해 말부터 시행했다. 당시의 규제 완화 신호가 올해 부동산시장 회복 수요와 맞물리면서 가계부채가 늘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9월 발간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통해 금융위가 정책금융상품으로 올해 1월 출시한 특례보금자리론과 정부의 대출규제 완화 등을 가계부채 상승 요인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문 정부 5년간의 가계부채 증가폭과 윤 정부 1년간의 증가폭을 비교한 점을 두고도 현 정부의 정책성과를 부풀리기 위한 '숫자놀음' 아니었냔 지적이 일었다. 올해 가계부채가 급증한 시기는 2~3분기인데, 지난 정부와의 실적을 비교할 때 이 중 3분기 집계를 제외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금융위 측은 "지난 정부가 잘 못했고, 현 정부가 잘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게 아니다"라면서 "현재의 가계부채 수준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이 아니란 걸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현재 가계부채 증가세가 지난 정부 대비 크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고금리가 계속되는 가운데 대출 수요가 줄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점점 커지는 이자부담은 결국 대출 부실화로 이어질 수 있다. 가계부채가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대출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시그널을 준 게 지난해 말부터였는데, 올해 대출이 급증하니까 불과 몇 개월 만에 수습을 하는 모양새"라며 "통일된 메시지를 주지 못해 시장 혼란이 커지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인데, 이 와중에 지난 정부와의 숫자를 단순 비교하면서 가계부채 관리가 잘되고 있다고 하니 논란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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