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박조아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홍콩H지수(HSCEI) 연계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와 관련해 판매사인 은행에 대해 적합성 원칙 준수가 의심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29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투자협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기본적으로 금융투자상품과 관련된 자기책임 원칙이 있고, 당국에서도 그런 부분을 고려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며 "그러나 최근 일부 은행에서 ELS 관련해 소비자 피해예방 조치를 마련했다고 말하는 건 자기면피로 들린다"고 지적했다.
그는 "홍콩H지수는 과거에 49.3%나 폭락한 적이 있는 기초지수로 대내외적 사이클의 영향으로 급락을 심하게 했던 전적이 여러번 있다"며 "ELS라는 고위험·고난도 상품이 다른 곳도 아닌 은행 창구에서 고령자들에게 특정시기에 고액이 몰려 판매됐다는 것만으로 적합성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홍콩H지수는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우량 중국 국영기업들로 구성된 지수다. 국내 금융사들이 판매한 연계 ELS 상품은 홍콩H지수 흐름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파생상품이다. ELS 만기는 보통 3년으로 기초자산 가격이 발행 시점 대비 40∼50% 이상 떨어지면 녹인(원금손실·Knock-In)' 구간에 진입한다. 이 상품을 판매했던 2021년 초 1만~1만2000포인트였던 홍콩H지수는 현재 5830포인트 수준까지 하락했다.
이에 따라 내년 만기를 앞두고 있는 홍콩ELS 상품에서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홍콩H지수 연계 ELS 판매 은행, 증권사 등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금감원 등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에서 판매된 H지수 ELS 판매 잔액은 15조6000억원 수준으로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물량은 약 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중 손실 발생 구간에 진입한 물량의 절반 이상인 4조7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 금감원장은 "상품 판매 적합성 원칙의 본질적인 취지를 생각하면 고위험 상품을 다른 곳도 아니고 은행 창구에서 고령자에게 특정 시기에 고액을 몰아 판매했다는 것만으로도 원칙을 지켰는지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며 "예를 들어 노후 보장 목적으로 정기 예금에 재투자하고 싶어하는 70대 고령 투자자에게 상품을 제대로 설명했는지 여부를 떠나, 수십퍼센트의 원금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고위험 상품을 권유한 것이 적정한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상 적합성 원칙은 금융사가 소비자에게 금융상품을 권유할 때 소비자의 연령, 재산 상황, 거래목적, 투자 경험 등에 비춰 부적합한 상품 권유를 금지하는 원칙을 의미한다.
이 금감원장은 "일부 은행에서 ELS 판매 한도를 지켰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증권사는 한도가 없다"며 "수십개 증권사에서 판매한 것을 합친 것보다 한 은행(KB국민은행)에서 판매한 것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은행은 진지하게 적합성 원칙을 소비자보호에 기반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으며, 그랬다면 지금처럼 100% 소비자 피해 조치를 완료했다는 등의 언행을 쉽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사에 대한 검사 절차에 대해선 "연내 기초사실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기간의 변동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일부 분쟁조정이 예상되는 것들도 있어 선제적으로 살펴보고 우려사항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가능한 책임 분담 기준을 갖는게 적절할 것 같지만 아직 구체화 된 계획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