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품질' 외치지만···건설현장은 '불법 하도급' 여전
'안전·품질' 외치지만···건설현장은 '불법 하도급'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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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안전 이슈로 '중대재해 0건'·품질 관리 등 올해 목표로 꼽은 건설사들
치솟는 원자재·인건비에 하도급 계약 선택···"공사비 줄이기 위해"
대금 문제 생기면 하도급자는 시공 품질이나 안전 신경 못써···부실공사 촉발
(사진=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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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지난해 부실 시공 여파와 중대재해 사고 등으로 안전 관리 이슈가 더 강조되면서 건설사들이 새해 목표로 '안전'과 '시공 품질' 최우선 과제로 내놓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정작 건설 현장에서 공사비를 줄이기 위한 건설업의 하도급 관행 등이 잇따르며 '시스템'과 '기술'만 강화해 봤자 안전 관리의 실효성이 있겠느냐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12일 건설업계의 신년사에 따르면 다수의 대형 건설사들이 올해 목표로 '중대재해 제로(Zero)'와 품질 관리를 꼽았다. 회사 대표들을 포함한 임원들은 최근 시무식 등을 위해 공사 현장을 방문해 직원들에게 안전 관리를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건설현장에서는 여전히 공사비 등 비용 절감에 나서는 모습이다. 지속되는 원자재와 인건비 상승으로 건설사들의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건설사에서 비용을 줄이기 위해 최저가 공사비를 제시하는 업체에 해당 공사를 맡기는 하도급 계약을 맺는다. 하도급 업체들은 최저 공사비를 맞추기 위해 기술자보다는 값싼 인력과 저렴한 자재를 사용하는 만큼 부실 공사 등 안전과 품질 이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건설 현장 노동자 2511명 설문조사를 한 결과, 부실시공의 원인(중복응답) 1위는 도급 문제 관련(73.8%)으로 나타났다. 이어 △무리한 속도전(66.9%) △부실 감독·감리 부재(54.0%) 등이 뒤를 이었다. 또 정부 관계 부처가 만든 '건설공사 불법하도급 차단방안'의 보고서를 보면, 2021년 발생한 광주 동구 학동 건물 붕괴 현장도 사고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당초 책정됐던 평당 28만원 수준의 해체공사비가 도급을 반복하면서 처음 금액의 단 16%인 평당 4만원에 진행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현대건설은 조달청 시설공사에서 하청계약을 맺은 서광종합개발에게 일방적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조달청으로부터 발주받은 공사대금의 50% 수준에서 하청업체에 공사를 맡겼다. 서광종합개발은 터무니없는 공사비임을 알고도 계약을 체결한 뒤 자비를 들여 먼저 공사를 진행한 후 설계변경 대금을 현대건설 측에 요청했는데, 현대건설은 이를 인정해 주지 않고 협의 없이 계약을 해지했다는 내용이다.

DL이앤씨와 SK에코플랜트 컨소시엄도 지난해 튀르키예 차나칼레대교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하도급 업체에 지급해야 하는 추가 대금을 치르지 않아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컨소시엄은 현수교 케이블시스템 설치를 위해 '관수이앤씨'에 하청 공사를 줬는데 추가 공사비를 주지 않는다며 관수이앤씨가 해당 사건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한 것이다. 해당 사건으로 공사는 1년 넘게 지연됐다.

태영건설 사태로 공정거래위원회가 건설 분야 하도급대금 지급보증 긴급 점검에 나선 가운데, 지난 6년간 건설업계의 하도급거래법 위반행위 중 평균 75% 이상이 공사대금을 부실하게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는 비판도 나왔다. 2018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공정위가 '경고' 이상 제재를 내린 건설사 하도급법 위반 사건은 997건이나 이 중 검찰에 고발된 사건은 16건(1.6%), 고발 없이 과징금이 매겨진 사건이 고작 31건(3.1%)이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3년 동안 접수된 하도급 관련 분쟁은 400여건, 액수도 2500억원에 달한다. 건설 하도급 공정거래 체감도 점수도 △2021년 72.5점 △2022년 68.8점 △2023년 67.9점으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

한 전문건설사 관계자는 "문제는 원청사의 갑질이 단순히 대금 미지급 사안이 아니라 건설 현장의 여건을 악화시킨다는 것이다"라며 "하위 사업사가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면 경영난으로 공사의 시공품질이나 안전관리엔 신경쓸 겨를이 없어 결국 건설 분야의 총체적 퇴행으로 이어지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종광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공사비 인상과 경기 침체로 인해 자금난이 가중되자 건설사들이 자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하도급업체에 부담을 전가하는 불공정행위가 더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중소 건설사들은 자재비를 선지급하고 인건비도 하루하루 지급해야 하는데 제때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그만큼 공기를 단축하고 인건비를 줄이는 무리수를 두게 된다"며 "대기업 건설사의 갑질은 부실공사를 촉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어 주의와 감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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