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미래를 잡아먹는 괴물이야기
[홍승희 칼럼] 미래를 잡아먹는 괴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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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요즘 한국사회의 가장 큰 고민으로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급격한 출산율 저하가 꼽히는 이유도 결국 국가를 지탱할 국민의 감소가 초래할 여러 문제들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처는 문제를 인식한 이후 20여년간 반복적인 실패를 답습하기만 할 뿐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처음 문제를 깨닫고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점차 나은 대안을 찾아간다면 계속적으로 상황이 악화되는 일은 없을 테지만 그동안 이미 실패한 여러 정책들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새로운 대책을 찾는 발상의 전환을 외면하여 출산율 저하 속도에 오히려 가속도가 붙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 문제와 더불어 미래 먹거리와도 관련된 R&D 예산을 대폭 줄이고 교육예산도 삭감해버리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지며 과연 국가의 미래를 망칠 작정을 한 것이냐는 격앙된 여론이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처음 2024년 정부 예산안이 나왔을 때는 순간 한국의 성장을 막으려는 나라의 스파이가 대통령 주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나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로 충격을 받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필자만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아니었던 듯 비슷한 소리를 간간이 듣게 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납득하지 못한 결정이었다는 얘기다.

과학기술분야 관계자들은 정부 R&D 예산의 대폭적인 삭감은 단지 프로젝트 몇 개가 중단되는 게 문제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그보다는 연구개발에 대한 국가의 홀대로 일에 대한 자부심은 물론 당장 연구자 개인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겹쳐 당장 석`박사 과정 나아가 포스트닥터 과정에 있는 인력들의 연구현장 이탈을 불러올 뿐만 아니라 앞으로 연구분야를 택할 미래 인력들마저 발길을 돌리게 만들 것이라는 점이 더 큰 걱정이라고 말한다. 한번 현장을 떠난 인력들이 설사 내년도에 예산을 다시 늘린다 한들 되돌아 올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도 말하고 있다.

출산율의 급격한 감소에 가장 큰 이유로는 결혼 자체를 주저하게 만드는 높은 주거비와 더불어 결혼한 이후에도 여성들의 경우 독박육아와 경력단절 등의 두려움과 과도한 사교육비를 요구하는 교욱 환경에 대한 부담 등을 지적한다. 그러나 그 모든 문제에 대해 종합적 대책을 마련해야 할 정책기구도 사실상 없고 출산 관련 위원회가 있긴 하지만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연구를 할 역량은 없어 보인다.

최근 정부가 내놓는 대책이나 예산편성 등을 보면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 기피하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집값이 비싸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접은 신혼부부에게는 집값이 하락추세에 들 때마다 대출 늘려 줄 테니 '빚내서 집사라'는 소리를 반복할 뿐이고 교육비 지원을 늘리고 공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교원 증원 및 역량강화 교육 확대 방안을 모색하는 대신 공교육 현장에 사교육시장을 끌어들일 궁리나 하면서 교육예산은 삭감했다.

지금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학자금대출로 인해 사회생활 첫발을 빚과 함께 내딛는다. 이미 지금 대학생 세대는 이미 출생율이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한 때 태어나 전체 학생수가 줄었다. 그 줄어든 학생들에 대한 국가사회의 지원을 확대할 궁리를 하는 게 국가의 미래를 위해 정부가 추구할 일이지만 그런 대다수 중산층 가정과 그 자녀들의 고민에 대한 이해는 없는 듯하다.

지금 나오는 정부의 교육관련 정책들은 전인 교육을 폐기하고 대신 오직 암기천재, 필기시험용 영재 육성이 교육의 목표라 여기는 구시대적 교육관의 반영이다. 4차 산업혁명을 말하면서 그런 시대가 요구하는 상상력과 창의성을 죽이고 줄 세우기에 특화된 획일적 교육을 오히려 강화하려드는 셈이다. 이는 정책 입안자들 자체가 획일화된 사고, 창의력 결핍의 가치관을 진리인양 하는 이들로 채워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모든 정책들이 다 기득권층, 소수 최상류층의 이익을 강화하고 그들의 지위를 굳건히 하기 위해 중산층, 서민의 성공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을 넘어 아예 파괴하려는 시도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려운 행보들을 최근 거듭해 보게 된다. 문제는 이런 정책이 결과적으로는 그 보호하고자 하는 계층의 기반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부나 권력 그 어떤 것이라도 스스로 욕망을 억제할 줄 알 때 더 오래 유지될 수 있다는 옛사람들의 지혜가 과연 오늘날은 무용한 것인지 가진 자들이 한번쯤 생각해볼 줄 알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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