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人] HD현대중공업의 시작-정주영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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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정비사업에서 건설 지나 중공업으로
'500원짜리 지폐'의 기적···조선 신화의 시작

맨땅의 기적을 일으키며 성장한 국내 조선 산업이 현재 격변의 시기를 맞고 있다. 한때는 해양플랜트 발 위기로 고사 위기를 견딘 조선업계가 친환경·디지털 전환이라는 또 한 번의 파도를 만난 것이다. 거친 파도를 견뎌온 국내 조선 산업의 역사를 인물 중심으로 톺아본다. /편집자주

고 정주영 회장 (사진=현대자동차그룹)
고 정주영 회장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서울파이낸스 김수현 기자] 반세기 전만 해도 조선 산업 불모지였던 우리나라가 현재 세계 조선 시장을 호령하는 대표적인 국가로 거론되고 있다. 바로 우리나라 조선업의 시작과 함께한 인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다양한 어록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이봐, 해봤어?"는 유에서 무를 창조한 그를 가장 대변하는 말로 꼽힌다. 그는 백사장이었던 울산 앞바다에서 우리나라 조선 산업의 가능성을 내다봤다. 또 설계도만으로 영국에서 차관 도입을 해내며,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를 동시에 해냈다. 현대그룹 설립자이자 조선 산업의 이끈 정 회장의 도전을 되짚어 본다.

◇건설사 직원이 조선소 직원으로

부지 조성에 들어간 울산조선소 1972년 전경 (사진=현대중공업그룹 50년사)
부지 조성에 들어간 울산조선소 1972년 전경 (사진=현대중공업그룹 50년사)

"안 된다고 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기어코 해내고 말겠다는 결심은 더 굳세어지고, 일이 되도록 하기 위한 노력을 더욱더 치열하게 할수 밖에 없어진다" 현대조선소를 구상했을 때때 정 회장이 한 말이다.

그는 1940년대 현대건설의 전신인 자동차 정비회사 아도서비스를 운영했던 정 회장은 사업 영역을 현대자동차공업사, 현대토건사 등으로 확장했다. 

이에 현대중공업의 전신이 되는 조선사업추진팀 역시 현대건설 기획실 직원 12명을 차출해 만들었다. 이들은 당시 조선 관련 기술력뿐만이 아니라 재정력 등 구조적 기반 자체가 부실해 외국 기업과 기술제휴 방안을 모색했다. 

다만 이들의 노력은 합작선을 모색했던 외국 기업의 파행으로 무산되고 만다. 이스라엘 '팬마리타임'의 경영인 메리도가 회삿돈을 빼먹고 차관 도입에 높은 커미션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후 현대는 이들과의 계약을 파기했다. 

◇500원짜리 지폐와 4300만 달러 차관

1971년 영국 버클레이은행과 조선소 건설 차관 도입 서명을 마치고 환담 중인 정주영 창업자 (사진=현대중공업그룹 50년사)
1971년 영국 버클레이은행과 조선소 건설 차관 도입 서명을 마치고 환담 중인 정주영 창업자 (사진=현대중공업그룹 50년사)

조선사업추진팀은 1970년 조선사업부로 정식 발족되고, '대형조선소사업 계획'이 추진됐다. 이들은 창업자금을 6300만 달러로 설정했지만 이중 4300만달러를 외자로 조달해야 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500원짜리 지폐' 일화다. 1971년 정 회장은 차관 도입을 위해 런던에 날라가 롱바톰 애프도어 회장을 찾았다. 롱바톰 회장은 당시 영국 하원의원을 역임하며 버클레이 영궁은행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회사의 건설 실적, 발전 가능성 등을 설명하는 정 회장의 말에 롱바톰 회장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정 회장은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들며 "한국은 이미 16세기에 철갑선을 만들었다. 다만 그 후 산업화가 늦어져 조선에 대한 아이디어가 녹슬었을 뿐 한 번 조선을 시작하면 몇백년 동안의 잠재력이 분출돼 나올 것"이라 설득했다.

당시 500원짜리 지폐에 거북선이 그려져 있었다. 롱바톰 회장은 이국적인 거북선의 모습 마음이 기울었다. 이후 그는 한국에 직접 와 현장을 실사한 후 추천서를 영국 버클레이은행에 보냈다. 애플도어의 보증은 차관 도입뿐 아니라 외국 회사와의 기술 제휴 등으로 이어졌다. 특히 애플도어와의 기술 제휴는 기술 용역료로 일시불하는 조건이 아니라 배 12척을 건조해 판매할 때까지 분할 상환하는 조건으로, 당시 국제 관례상 파격적이었다고 평가받는다.

현대는 이러한 노력을 통해 조선소 건립의 밑바탕을 다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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